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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밀의 숲 시목여진] 2차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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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숲 윤세원 과장] 살아야 하는 이유 (단편)

by 보리-새우 2020. 12. 30.

*비밀의 숲 시즌1 및 시즌2 내용 스포일러를 포함하므로 주의 부탁드립니다* 


 비숲 인물들의 후일을 그려보는 단편 모음입니다. 시간 순서를 따르지는 않습니다.

첫 번째 단편 : [비숲 시목여진] 어느 60대 부부의 연말 (2051년 세밑) _ 포스타입에서 읽기:  https://bori-shrimp.postype.com/post/8386549

두 번째 단편: [비숲 윤세원 과장] 살아야 하는 이유 (2027년 세밑) _ 포스타입에서 읽기:  bori-shrimp.postype.com/post/8814540


본 단편은 윤세원 과장이 체포되어 수감되었던 2017년으로부터 10년이 흐른 시점인 2027년 그의 삶을 담습니다. 윤세원이라는 인물의 서사가 너무도 무거워서 쓰면서 마음을 굳게 먹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글이 전체적으로 많이 어두운 점, 그리고 약 2만 5천자 분량으로 제가 올린 글 중에서 가장 긴 점, 읽으시기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 

 

 

 

 

서리가 온통 내려앉은 아침이다. 한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이른 시간부터 분주하다.

40대 중반쯤의 한 남자가 반듯한 걸음걸이로 한 건물 앞에 다가와 멈춘다. 남자는 누군가를 찾는 듯 입구 쪽을 기웃거리더니, 고개를 숙이고 서서 기다리기 시작한다.

이른 아침의 환한 겨울볕이 건물 외벽을 온통 휘감지만 남자는 볕을 쬐는 대신 조금 비켜서서 입구 옆의 그늘에 머무른다.  

남자가 문득 고개를 들어 건물의 간판을 올려다본다.

용산구 노숙인 행복쉼터 운영사무실

실용적인 디자인의 간판이다. 건물 전체가 주는 인상 또한 단정하고 소박하다. 

간판을 한동안 올려다보던 남자는 시선을 천천히 거둔다. 

남자가 기다리는 이는 건물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남자는 들어가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얼어붙은 밖에서 기다리기만 한다. 남자가 묵묵히 발끝을 내려다보는 동안 십여 분이 흐른다. 

남자의 행색은 몹시 초라하지만 추레하진 않다. 몸에 걸친 의복은 심하게 낡긴 했어도 단정함의 범주 안에 있으며, 짧게 깎은 머리칼은 직업군인 같은 인상을 준다. 

높고 곧은 콧날과 날렵한 턱선 또한 범상치 않은 느낌을 더하지만, 사실 남자의 외양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단연 눈빛이다. 평범한 안경테 뒤편으로 낮게 가라앉은 눈빛이 너무도 아득하고 슬퍼 보여서, 이 남자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그 잔상을 쉬이 흘려보내지 못하기 마련이다.  

 

두툼한 코트 차림의 한 여성이 서류를 팔락거리며 뛰어나온다. 여성은 두리번거리더니 남자에게 다가와 쾌활한 태도로 말을 건넨다. 

"아, 배식 봉사 식자재 운반 담당하시는 분이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새로 온 행정직원입니다." 

남자는 낯선 이를 경계하듯 움츠리더니, 눈을 마주치지 않고 느릿하게 묵례한다.

직원은 남자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이번엔 사과를 한다. 여전히 퍽 살가운 태도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겠어요. 인수인계 때문에 늦어졌습니다. 춥지 않으세요?"

"괜찮습니다." 남자가 처음으로 입을 연다. 나직하게 잠긴 목소리다. 잘못한 게 본인인 것마냥 고개를 푹 숙인 남자 탓에 직원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색한 미소만 피워올린다. 

직원은 남자와 소통해보는 걸 일단은 포기하고 곧장 업무 안내로 넘어간다. "여기 이 박스들 전부 트럭에 상차해 주시겠어요? 갈색 상자는 계란이니까 조심해 주시고요. 그리고 오전 아홉 시 전까지 농수산물 도매시장 들르셔서..." 직원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남자는 손을 앞으로 모으고 경청한다. 

 남자는 주어진 일에 말없이 착수하고 직원은 사무실로 돌아간다. 입구 안쪽 한 쪽에 높이 쌓였던 큼직한 박스들이 차례차례 트럭으로 옮겨진다. 

거의 끝나갈 무렵, 남자는 묵직한 박스 두어 개를 단단히 들고 건물을 나서다가, 건물로 들어서려던 한 젊은이와 정면으로 마주친다. 순간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남자는 한 걸음 비켜나 우뚝 멈추어 선다. 두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인 듯하다... 주고받는 눈빛들 사이엔 분명 모종의 장력이 존재한다. 

 

나이가 더 많은 남자가 꾸벅,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한다. 그러자 젊은 남자도 꾸벅, 적당한 깊이로 묵례한다. 

젊은 남자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 망설이더니 대신 살짝 웃으며 한 번 더 묵례한다. 나이든 남자 또한 한 번 더 깍듯이 인사한다. 나이든 남자는 박스 옮기는 일을 다시 시작하고, 젊은 남자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나이든 남자가 허리를 그렇게 깊이 숙인 건, 마주한 사람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평생 씻지 못할 죄를. 젊은 남자가 그런 그에게 마주 허리를 숙인 건, 그럼에도 당신을 연장자로, 한 명의 사람으로 존중한다는 뜻이다.

 

 

...복수의 끝엔 가책 빼곤 남은 게 없었다.

수감자의 하루는 길디 길었다. 온몸의 힘을 빼고 매 순간을 흘려보냈으나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휴식이길 감히 바랄 순 없었다. 

밤이 되면 끝없이 펼쳐진 바늘밭 위로 쓰러져 몸부림쳤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제 죄과를 자각하노라면 그는 그 모든 분노가 시작된 날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영영 흐려질 수 없는 아이의 모습을, 그 아프디 아픈 마지막 모습을 수없이 보고 또 보았다. 

속죄해야 하는 자는 고통에서 함부로 도망쳐선 안 되었으나, 점차 버틸 힘조차 흩어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턴, 죽음도 속죄의 일부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수감된 지 2년이 흘렀을 때쯤이었다. 그 생각은 빠르게 머릿속을 점유해 나갔고, 확신은 어느덧 구체적 계획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한경감님이 찾아왔던 날, 그날 밤을 온통 지새운 길고 긴 생각 끝에... 윤과장은 죽으려던 마음을 접어야만 했다. 

대신 그는 초조해졌다. 초조하게 기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오랜만에 생겨났다. 시간이 이렇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또 다른 소포가 올까. 그때 그 이름 없는 소포는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결론이라곤 없는 이러한 상념들이 윤과장의 머릿속에 일정한 자리를 확보했다. 윤과장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 지분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정말로 이름 적힌 소포가 오고 마침내 면회 일정까지 잡혔을 땐 윤과장의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무슨 말을 듣게 될까.

한경감님은 나더러,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박경완 씨에게서 찾으라 하셨지만, 

내겐 그럴 자격이 있나. 

나로 인해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입은 이에게 내가 염치없이 기댄다면, 내 비루한 존재를 지탱하려고 그렇게 기댄다면, 

만약 그런다면... 그로 인한 죄의식에 더더욱 죽고 싶지 않을까.

 

피 묻은 장갑, 피, 온통 쏟아지던 피...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 몸짓들, 죽어가던 이의 표정들. 흐려질 수 없었던 그 이미지들이 매일 밤 플래시백되었다. 그 순간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사형집행인이라도 된 양 굳은 얼굴로 칼을 휘두르던, 그러나 돌아서서는 손을 덜덜 떨던 순간들이.

윤과장은 내내 악몽에 몸부림치다가 식은땀에 흠뻑 젖어 깨곤 했다. 그렇게 깨고 나면 창가에 웅크려 온몸을 떨며 온 새벽을 하얗게 새웠다. 같은 방 재소자들은 그런 모습에 익숙해졌는지 종내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자신이 죽인 이의 아들을 몇 년 만에 대면해야 했을 때, 윤과장은 차마 눈을 마주칠 용기가 없어 고개를 푹 수그렸다.

 

"오랜만이네요."

"..."

윤과장은 깊숙이 고개를 더 깊숙이 숙였다가 천천히 들었으나, 여전히 상대의 눈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상대도 그걸 원하지 않기를 그저 바랐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담담히 분노를 쏟아내던 젊은이의 아픈 눈빛을 그는 너무도 선연히 기억했다. 

 

"그때 제가 막 그랬죠... 우리 아빠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죽였냐고."

"..."

"그때 아저씨 만나기 전에, 정본 아저씨가 얘기해 줬어요. 범행 동기랑 배경... 그런 거요. 우리 아빠가 무슨 짓을 했는지. 그 사고... 가 아빠 때문이었다는 거."

"..."

"그땐요, 그 얘길 듣고도 이해를 할 수 없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칼까지 들어야 했냐고. 죽인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우리 아빠한테 복수를 한 거라지만 결국 남겨진 고통은 할머니랑 내 몫인데, 이건 무슨... 연좌제냐고." 

"죄송합니다." 

"..."

윤과장의 바짝 마른 입술이 드디어 작게나마 달싹였다. 이 작은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유리 너머로 넘어갔을까 확인할 겨를이 없었으나, 어쨌든 그는 제 사죄가 피해자에게 영향을 주길 바랄 정도로 염치가 없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언어로 표현되는 사죄가 무의미한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사과를 받는 쪽의 몫이다. 사과를 하는 쪽에겐 선택권이 없다. 따라서 할 수 있는 어떤 말이든 해야 했다. 윤과장은 몇 년 전처럼 떨리는 음성으로 사죄의 말을 반복했다. 상대는 잠자코 들었을 뿐, 몇 년 전 그랬듯 뛰쳐나가 버리지는 않았다. 윤과장은 그에 안도하려고 하는 자기 자신을 증오했다. 

한동안 조용하던 젊은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아저씨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윤과장이 흠칫 떨며 처음으로 고개를 조금 들었다. ...이해받기를 원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말뜻을 짚지 못해 갈피를 잃은 윤과장의 시선이 강화유리 창 하단을 황망히 맴돌았다. 문득, 시선의 끝에 작고 사랑스러운 아기 사진 한 장이 걸렸다. 윤과장은 크게 동요했다. 그를 방문한 젊은 남자가 본인을 닮은 아기의 사진을 내밀고 있었다. 강화유리 창 너머로 사진의 색감이 몹시도 선명했다.

"저, 아빠가 됐습니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는 날카롭지도 무디지도 않았다. 저도 이젠 아버지라고,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젊은이가 그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그 의미를 희미하게나마 인지했을 때 윤과장은 불에 덴 듯 흠칫 놀랐다. 언어를 잃어버리고 만 그는 입술을 달싹일 뿐 어떤 음절도 발음할 수 없었다. 

"우리 아기 이름은 수민입니다."

"..."

"신생아실에 있을 때요, 아기가 잘못될 뻔했어요."

순간 윤과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온몸을 떨며 윤과장은 처음으로 상대의 눈을 봤고, 그 눈에선 동류의 분노를 겪은 젊은 아버지의 고통이 읽혔다. 잘못됐어요, 가 아닌 잘못될 뻔했어요, 라는 말이었기에 윤과장은 가까스로 제정신을 유지했다. 

"지금은 괜찮습니까." 갈라진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깊은 곳에서부터 소리가 떨려 나왔다.

윤과장의 트라우마를 짐작한 걸까, 상대는 오히려 윤과장을 안심시켰다. "네. 지금은 괜찮아요. ...잘못될 뻔했는데 다행히, 진짜 다행히 살았어요. 그게 석 달 전 일이에요."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윤과장이 눈을 꾸욱 눌러 감고 참았던 숨을 쉬는 동안 젊은 아버지는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산후조리원에서 아기들한테 셀프수유를 시켰어요. ...그 갓 태어난 아기들한테요. 애기들 입에다 젖병을 기울여 물려 놓고 그냥 방치했다는 거죠."

차분하던 젊은 남자의 목소리에 점점 분노와 고통이 담겼다. 음절 음절마다 떨리는 분노가 담긴다. 

"우리 아기가, 우리 수민이가 질식... 질식사, 할 뻔했어요. 그 사람들 때문에. 한참 부족한 인력에 일거리를 잔뜩 안겨놓고 무리하게 운영한, 그 어린 아가들을 물건처럼 대한 그 인간들 때문에." 

"...!"

"우리 아기가 그렇게... 될 뻔했는데, 그 조그만 폐에 온통 염증이 차기까지 했는데, 운영자란 인간들은 실수라며 뻔뻔하게 일관했어요. 그 후로도 조금도 바꾸지 않고 우리 입 막는 데에만 급급했어요. "

"아기들이 그렇게 죽는 일이 해마다 전국에 몇 번씩이나 있대요. 그래서 법도 생겼대요. 근데 아무도 처벌을 안 받았어요. 처벌을 받은 사례가 여태 한 건도 없었대요."

"눈이 뒤집혔어요. 우리 아기가 진짜로 ...잘못됐더라면, 저도 여자친구도 아저씨처럼 그랬을 것만 같은 거예요. 복수한다고 누군갈 공격하지 않았을 거란 보장이 없는 거예요."

"..."

"그때부턴 직장 그만두고 제가 돌봤어요. ...저도 그렇고 여자친구도 그렇고 다 비정규직인데 육아휴직 그런 게 어딨겠어요. 여자친구가 재취업이 더 힘드니까 제가 그만뒀어요. 여든 다 돼가는 할머니께 맡기면 그거야말로 불효고."

"..."

"애기 재워놓고 잠깐씩 쉴 때마다 자꾸 조리원 생각에 화가 끓어오르는 거에요. 진정하려고 이런저런 생각 하다 보면 아저씨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보냈어요, 그때 물품."

윤과장이 경완을 봤다. 경완이 멋쩍은 듯 중얼거렸다. 

"육아가 생각보다 많이 어렵더라구요. 아기랑 잠시도 떨어져 있을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이제야 왔어요. 그새 석 달이나 흘렀네요."

"...!"

"우리 아기 많이 컸어요. 이거 보세요. 이 사진은 조리원에서 데리고 나왔을 직후, 이 사진은 어저께 찍은 거." 

윤과장이 떨리는 시선을 들어 사진을 살폈다. 

"따님이... 많이 닮으셨네요." 이번엔 다른 의미로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어린 생명에 대한 순수한 감탄이었다. 

"그쵸? 저만 빼닮았다고 여자친구가 섭섭해해요."

"이제 만으로 3개월..."

"네, 만으로 3개월."

"또래보다 성장이 빠르네요."

"그쵸? 평균보다 우량하대요." 

젊은 아버지의 목소리에선 뿌듯함이 묻어나왔다. 

"...벌써 미소도 짓습니까?"

"네! 방긋방긋 웃어요. 보통은 5개월은 되어야 웃는다는데." 

아이가 내딛는 매 걸음의 성장은 부모에겐 더없이 벅찬 행복이다. ...윤과장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사랑스러운 아기의 행복한 아버지이던 시절이 있었다. 경완이 꺼낸 아기 얘기로 말미암아 윤과장의 생각이 아들과의 기억을 향할 수밖에 없음을 두 사람 모두 알았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두 아버지는 모종의 공감대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즈음 면회 시간이 끝났다. 교도소의 면회 시간은 몹시도 엄격하여 조금의 초과도 허용하지 않았다. 경완은 무엇인가를 더 말하고픈 얼굴이었다. 다시 오겠노라 말하고 돌아서는 경완의 얼굴을, 윤과장은 이번엔 조심스럽게 눈을 들어 살펴보았다. 경완의 표정은 복잡했으나 그 표정엔 모종의 후련함이 감돌고 있었다. 

윤과장은 대화의 내용에 압도되어 한동안 의자에서 일어날 생각을 못하다가 교도관에 의해 끌려나갔다. 

 

경완의 말대로 경완은 다시 찾아왔다. 면회는 두세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매번 다음에 대한 기약이 있었다. 대화의 내용은 주로 어린 딸과 노모의 근황 얘기였다. 어느 날엔가는 경완이 재취업에 성공했다는 소식도 전했으며, 또 어느 날에는 드디어 늦은 식을 올렸다며 작은 웨딩 포토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 이른 봄날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립 어린이집 추첨에 붙었다는 기쁜 소식도 전해왔다. 경완이 상실에도 불구하고 이젠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게 윤과장에게 안도감을 줄 수는 있었으나 그의 죄책감을 덜어줄 수는 없었다. 그의 죄책감은 엷어져선 안 되는 종류의 감정이었다. 

경완은 매번 어떠한 말을 더 하려는 듯, 아마도 언어로 표출-명시되는 어떠한 용서의 말을 하려는 듯 망설였지만 매번 결국 그냥 떠나곤 했다. 

 

경완은 다른 이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시작은 그의 할머니, 박무성의 모친이었다. '그분들한테 가서 전할까요? 당신 자식 난도질한 인간이 숨을 쉬는 것 같더라고?'  당시 한여진 경위의 일갈으로 말미암아 윤과장은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제 죄과를 직시했다. 그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2년을 산 끝에 결국 앙상한 노인을 마주했다. 믿을 수 없게도, 노인은 초췌한 그를 보며 죽은 아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많이 여볐구나(야위었구나), 노인의 잠겨든 목소리가 한숨에 섞여 나왔다. 노인의 눈동자 깊숙이 자리 잡은 슬픔을 마주했을 때, 윤과장은 제 발밑에 입을 벌린 심연을 봤다. 깊숙이 머리 숙여 사죄하는 그를 노인은 그저 말없이 응시했다. 이번 역시 그 사과의 효용을 판단하는 것은 사과를 받는 쪽의 몫이었다. 노인이 넣어주신 구매식을 윤과장은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었다. 먹으라 당부했기에 먹었다.

그 다음번은... 한여진 경감과 황시목 검사였다. 한경감님은 그전번 만났을 보다 퍽 밝아진 표정으로 웃었다. "제가 경완일 데려올 거라 생각하셨죠? 그 반대예요. 어유, 요새 저도 황검사도 너무 정신이 없었는데 경완이 덕분에 오게 됐어요."

황시목 검사는 2017년의 취조실 이후 처음이었다. 윤과장에게 황검사는, 사법정의는 이미 무너졌다고 굳게 믿었던 그 생각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게 만든 그런 존재였다. 그 낮고 깊은 음성에 담겼던 날카로운 말들은 몇 년이 지나도록 머릿속에 선연히 남아 무수히 되풀이되었다. 그를 마주하기 전 윤과장은 심호흡을 해야 했으나, 몇 년 만에 만난 황검사의 눈빛은 그전번과 완연히 달랐다. 황검사는 법 집행자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면회실에 와 있었다.

"...제 말을 정정해야 합니다. 그 당시 제가 했던 말이요."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황검사의 말에 윤과장의 눈이 커졌고, 경완과 한경감님 또한 황검사를 돌아보았다. 

"윤과장님은 살인을 즐기는 싸이코들보다도 더 심한 짓을 한 거라고, 그렇게 단언했죠 제가."

"옳은 말씀이셨습니다." 윤과장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뇨, 제 무지였고 제 오만이었습니다. 제겐 윤과장님의 행적을 그런 언어로 재단할 자격이 없었습니다. 제겐 주임검사로서 수사 그리고 기소를 할 의무가 있었을 뿐입니다."

"..."

"그때 전 모든 게 사법정의 안에서 명료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젠 그럴 수가 없습니다."

"..."

"...전 감히 짐작할 수 없어요. 윤과장님이 겪으셨던 ...고통을."

"..."

"사회시스템의 실패가 낳은 고통들이 수없이 되풀이되는데도 지켜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그런 세월을 살아왔으면서, 전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요."

"..."

"...그렇지만 제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윤과장님이 선택이 옳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도, 윤과장님과 공범 관계였던 그분을 괴물이라 칭한 것에 대해서도요. 윤과장님에게 당시 구형되었던 형량에 대해서도 의의가 없습니다."

윤과장은 그 말에 작게 끄덕였고, 황시목 검사는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이며 윤과장을 들여다보았다. 

 "...사법정의가 지정하는 바는 형기가 몇 년인가까지입니다.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선 아무것도 지시하는 바가 없구요. 오롯이 윤과장님 본인의 몫이겠죠... 이제 평가나 판단은 법이 아닌 윤리의 영역일 겁니다, 그 권리는 피해자에게 있을 테고요." 

한여진 경감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받았다. "저도 검사님이랑 생각이 같아요. ...그리고 이젠 경완이가 이렇게 찾아왔잖아요. 윤과장님, 경완이 면회 오길 기다리신 거, 정말 잘 하셨어요."

한경감이 경완을 돌아보며 다정하게 중얼거렸다. "기다리시기로 했었거든." 그 말 기저의 뜻을 알지 못하는 경완은 살짝 웃으며 주억거렸다. 그러나 그 뜻을 읽은 황검사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날도 면회 시간의 제한엔 예외가 있을 리 없었고 방문자들은 곧 떠나야 했다. 

세상이 나아지고 있는 거겠죠? 경완이 문득 물었고, 나아지게 해야지. 한여진 경감이 답했다. 곧고 단단한 눈빛이었다. 황시목 검사의 눈빛 또한 그와 같았다.

이미 아이를 잃은 한 아버지와, 병폐가 많은 세상을 불안해하는 또 다른 아버지. 두 아버지가 검경 구성원들에게 당부의 눈빛을 건넸다. 그 순간만큼은 윤과장과 경완은 나란히, 같은 편에 앉아 있었다.

 

 

경완은 여름 휴가철 말미에도 들렀고 추석과 설에도 왔다. 바빠서 방문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면 젊은이는 박경완, 이름 석 자가 또렷이 적힌 소포로 내복이며 생활물품을 보내오기도 했다.

경완의 방문을 기다리면서 그렇게 시간이 보다 수월하게 흘러서, 윤과장은 그 수월함에 가책을 느꼈다. 2020년 세밑쯤이었나, 윤과장은 결국 먼저 말을 꺼내 보기로 했다.

"왜 저한테 이렇게까지..."

윤과장은 질문을 구체화할 수 없었으나, 경완은 곧바로 알아들었다. 경완이 이 주제의 대화를 여태 유보해왔음은 경완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저 좋자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새해에도 계속 만나 주셔야 해요, 접견 거부하거나 그러시면 안 돼요, 아셨죠? ...그니까요, 그게..."

윤과장이 고개를 들어 경완을 보았다. 

“... 제가 아저씨 진작부터 용서한 거... 알고 계실 거라 생각했어요."

"...!"

"...말로 해야 하는 건 알았어요. 근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를 몰랐어요. ...진작부터, 내복 보낼 때부터였어요."

"..."

"아저씨를 원망하기만 했을 때는 제가 어렸어요. 역지사지를 할 줄 몰랐어요...

...저번에 황검사님 한경감님이 술을 사주셨거든요, 면회하고 나가는 길에요. 황시목 검사님이 얘기해 주셨어요. ...그때, 아드님이 그렇게... 되셨을 때..."

"..."

"부검... 을 못하셨다면서요."

경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고, 경완의 태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러웠다. 이번엔 경완이 윤과장의 눈을 차마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경완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은 윤과장의 얼굴이 굳어들었다. 

"어떤 마음이셨을지, 차마..."

"..." 

윤과장이 눈을 꾸욱 눌러 감았다. 오래된 그 먹먹힌 슬픔에, 잊어본 적 없는 그 쥐어짜는 고통에 가슴이 한계치까지 죄어들었다. 애써 입술을 달싹여 보았으나 언어가 되지 못한 생각은 발화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경완이 나지막이 입술을 달싹였다. 윤과장이 감았던 눈을 떴을 때 경완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제 와서야 제가 사과를 드립니다." 

윤과장이 그랬듯 경완이 사과를 거푸 반복하고 있었다. 

 

윤과장이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남은 힘이 모두 빠져나간 듯 목소리가 쉬이 나오질 않았다. 

"...경완씨께서는 사과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아니면... 미안하다고 말할 사람이 없잖아요."

"...!"

"...저라도 미안하다고 안 하면, 진짜 아무도 없는 거잖아요. 사과할 사람이."

 

윤과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완을 멍하니 응시했다. 

 

경완이 창 쪽으로 이마를 기대듯 다가와 속삭였다. 

"연좌제라도 있어야 하는 거죠... 제 아빠란 인간이 그렇게 끌어들인 돈으로 골프 배운 저도 죄인인 거잖아요. ...저 골프 그만뒀습니다. 다른 일 찾았어요. 골프장에 있을 때마다 생각이 났어요. 죄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아저씨한테, 그리고 다른 분들한테요. 아이들이... 열 넷이나 그렇게..." 

경완은 차마 문장을 끝맺지 못했다. 

"...아빠 때문에 잘못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생각을 하면 숨이 막혀요. 진작부터 이랬어야 했는데, ...지금 와서야, 저도 부모가 되어보고서야... 제가 이렇게 가책을 느끼고 이렇게 사과를 합니다. ...받아주지 않으셔도 돼요."

"..."

힘주어 다문 턱이 떨려왔다. 윤과장은 결국 경련하는 눈꺼풀을 꾸욱 눌러 감아야 했다. 괴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진심 어린 사과였다. 제 몫이 아닌 죄책감을 물려받은 젊은이가 사과를 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사과를 하고 있었다...

윤과장은 결국 목을 놓아 울고 말았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울었다. 이번만큼은 그는 오롯이... 자식을 잃은 아버지일 수 있었다. 그 심정을 짐작하는 또 다른 한 아버지가 유리창 너머에서 함께 울었다. 강화유리 양편에서 두 사람이 한참을 흐느꼈다. 서로 기대듯 유리에 기대어 울었다. 

 

 

그리하여 이제 두 사람 모두 안다. 결국 두 사람의 죄책감은 서로 굳게 맞물려 겹쳐 있다는 걸.

가석방되었을 때, 어떠한 충동이 문득 윤과장을 스쳤다. 가능한 한 먼 곳으로, 또는 가장 먼 곳으로 도망가버리고픈 충동이. 그러나 그건 일시적 충동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정본과 경완이 두부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부는 경완의 할머니께서 만들었다고 했다. 윤과장은 온기가 남은 두부를 먹으며 울음을 목울대 뒤편으로 삼켰다. 두부와 더불어 애써 삼켰다. 윤과장이 삶을 버린다면 경완은 어떻겠는가. 경완이 윤과장을 용서한 것은, 그리고 경완이 윤과장에게 사과한 것은... 뭐가 되겠는가.

 

 

이로써 윤과장은 죽을 수 없음이 명백하다. 그러나.

죽어선 안 될 이유가 있다 한들, 그게 살아야 하는 이유까지 포함하진 않는다. 

오래 전 아이를 잃었던 그날부터 윤과장에게 삶은 유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유의미한 것일 수 없었다.  

 

 

그래서 윤과장은, 그와 동일한 공허를 붙든 이들과 매일을 함께한다.

 

 

 

윤과장이 박스들을 싣고 트럭을 몰아 향한 곳은 노숙인 급식소다. 이른 아침이지만 그곳엔 이미 자원봉사자들과 센터 직원들, 노숙인들이 한데 모여 북적거린다. 급식소는 근린공원 옆 공영토지에 있는 가건물이다. 그 옆엔 큰 찻길이 있어 일찍 출근하는 차들이 정체를 빚고 있으며 공원엔 코끝이 빨개진 채 패딩을 두른 노숙자들이 모여앉아 추위를 견디고 있다. 활기와 한기가 공존한다. 

윤과장은 박스를 실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없이 박스를 옮긴다. 눈에 익은 봉사자들이 반갑게 인사하지만 그는 깊숙이 고개를 숙여 인사할 뿐 표정을 바꾸지 못한다. 

 

경완과 같은 일터에서 일하게 된 건 윤과장의 의도가 아니었다. 정본의 손에 이끌려 이 일을 시작했다. 정본은 로펌 경력을 살려 노숙인 행복쉼터의 사무총책임을 맡고 있었고, 경완은 골프장을 그만둔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 이 일터에 자리를 잡은 참이었다. 

윤과장은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단 봉사자 자격으로 몇 주간 참여해본 결과 그는 다른 일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이곳과 뭐랄까, 일체가 되어 있었다. 그 적응의 과정은 비가역적이었다.  

이 일터는 윤과장에게 어쩌면 가장 잘 맞는 곳이었다. 

일부 노숙인들은 온기를 일절 거부했는데, 그들은 봉사자들 특히 종교단체에서 나온 이들의 자기만족, 보람, 그런 것을 '기만'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런 이들도 윤과장만큼은 피하지 않았다. 동류임을 읽은 걸까. 

 

식자재 포장을 뜯어 조리실로 옮겨놓고 빈 박스를 치우는 작업, 건물 바닥이며 탁자 배식부스까지 말끔히 닦아놓는 일련의 작업을 윤과장은 조금도 쉬지 않고 수행한다. 윤과장을 한참 전부터 알아 온 봉사자들과 직원들은 그를 말리지 않고 내버려 둔다. 쉼 없이 일하는 게 그에겐 속죄의 고행이기도 하다.

긴 오전이 감각 없이 흐르고, 바야흐로 점심식사 시간이 다가온다. 지치고 허기진 이들이 모여들어, 한 끼 식사만큼의 온기를 되찾고자 길게 줄을 선다.

공허가 유독 짙은 이들은 사위가 소란해질 때 홀로 무리에서 떨어지곤 한다. 하여 윤과장은 외진 곳을 주의 깊게 살피며 공원을 한 바퀴 돈다. 식사할 생각도 없이 망연자실해 있는 이들, 또는 끼니때인 줄도 모르고 잠들거나 취해서 쓰러져 있는 이들을 일으켜 세워 배식대까지 부축한다. 

드디어 공원에 있던 모든 이들을 데려다 놓았다. 사람들이 제각기 식사에 몰두하는 동안 윤과장은 공원을 빙 둘러가 가장 외진 곳을 찾는다. 야산과 맞닿은 으슥한 그늘엔 낡은 벤치 두어 개가 있다. 처음으로 잠시 숨을 돌리려는 참이다. 윤과장은 낡은 벤치에 몸을 기대고 잠시 눈을 꾹 눌러 감지만, 휴식이 딱히 편안하지는 않은 듯 금세 일어나 주변을 힘없이 둘러본다.  

윤과장이 갑자기 뭔가를 본 듯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시야의 사각지대, 버려진 화장실 부스 뒤편 야산의 그늘에 누군가가 있다. 윤과장은 전속력으로 뛰어가 곧장 그 사람을 거칠게 껴안는다. 노숙인이 벗어나려고 몸을 버둥거리며 손에 한 움큼 가득 쥔 수면제를 입에 가져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몸싸움 탓에 두 사람은 땅바닥에 겹쳐 쓰러진다. 상호 간 힘으로 대치하는 상황이 잠시 이어진다.

둘의 나이대도 체격도 비슷하나, 한 번 UDT는 영원한 UDT라 했던가, 그 길고 피폐했던 나날들에도 불구하고 윤과장의 신체는 여전히 강건하다. 윤과장은 노숙인을 제압하여 결국 수면제가 땅바닥으로 온통 흩어지도록 한다. 눈도 없는 겨울날에 흰 수면제 알약들이 우박처럼 바닥을 구른다. 

노숙인은 알약을 긁어모아 보려 하더니 망연자실 주저앉아 넋을 놓는다. 윤과장은 그 옆에 잠자코 앉아 그를 지켜본다. 

"살기 싫다는데, 좀 죽자는데, 왜 억지로 살려?"

노숙인이 울먹이며 외친다. 그가 원망이 가득한 얼굴로 윤과장을 노려본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뭔데?"

윤과장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다. 사실상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 질문은 본인이 하고 싶은 거니까. 

윤과장은 노숙인을 그저 망연히 응시한다. 노숙인은 결국 그로부터 동류의 공허를 읽고 만다. 해서 노숙인은 성내는 걸 멈추고 수그러든다. 

 

노숙인이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린다. 

"잠이나 좀 자겠수다. 이거 한두 알만 주워 먹고." 

윤과장이 고개를 작게 흔들며 노숙인의 어깨를 감싸 일으켜 세운다. 노숙인은 이번엔 큰 저항 없이 그가 부축하는 대로 몸을 맡긴다. 

"식사하세요." 윤과장이 노숙인에게 처음으로 한 마디를 건넨다. 

 

내가 이 공허를 딛고 오늘을 맞이한 이유가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였다면

나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인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였다면

그러면 살 건가요, 당신은 

  

노숙인은 사흘을 굶은 사람처럼 밥을 먹는다. 윤과장은 그가 밥을 먹는 동안 옆에 앉아 조용히 기다린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운 노숙인의 시선이 윤과장의 바싹 마른 얼굴을 훑더니, 노숙인은 음식을 리필해 오는 길에 그릇 하나를 더 가져와서 윤과장에게 내민다. 

윤과장은 잠시 동안 노숙인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더니 잠자코 음식을 받아든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말없이 먹기 시작한다. 

 

  

 

휴일 없이 일해왔다. 새벽 일찍 쪽방을 나서서 밤늦게 들어왔다. 트럭을 달려서 물품을 나르는 게 본 업무였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무슨 일이든 했다. 닥치는 대로 일을 찾아서 했다. 밥 먹는 건 때로는 그냥 잊어버렸고, 때로는 배식봉사 후 남은 음식을 대충 먹었다.

자신을 가장 후순위로 두는 게 그가 속죄하는 방식이란 걸 아는 과거 동료들은 그를 억지로 챙겨주진 않았으나, 다만 최소한 집, 거주환경만큼은 들여다보려 애썼다. ‘사람 사는 집 같지가 않았어요...’ 윤과장 체포 당시 한여진 경위의 말을 기억하는 정본이 주기적으로 찾아왔다. 와서는 냉장고도 채워주고 캔커피라도 한 캔씩 나눠 마시고 가곤 했다... 같이 소주나 한잔 할까요, 그 말을 윤과장은 늘 거절했다. 알코올이 주는 망각과 안락 속으로 도피하는 일을 철저히 거부했으므로.

그를 잊지 않은 옛 동료들의 존재, 이 또한 그가 죽을 수 없는 이유를 추가한다. 그러나 자신은 그 무엇도 되돌려줄 수 없다는 자책이 항상 선명하다.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거예요, 서로가 서로한테 위로인 거라구요. 한여진 경정이 언젠가 담담한 말투로 전했던 그 말은... 윤과장이 기대어 보기엔 너무도 환하게 빛났고 그가 닿기엔 너무 높이 있었다.

 

  

 

 오후 일정도 촘촘하다. 윤과장은 다시 사무실에 가서 또 다른 박스 더미를 트럭에 옮겨 싣고, 재료 구매를 위해 도매상에 한 번 더 들른다. 급식소 가건물엔 급수가 안 되는 탓에 수돗물을 통에 받아 옮겨와야 하는데 이 역시 윤과장이 맡은 일 중 하나다. 점심때 보니 물이 다 떨어져 가고 있었으므로, 사무실에 들른 김에 물통들을 모두 꽉꽉 채운다.

 

사무실에서 급식소를 향하는 동선엔... 유치원이 한 곳 있다.

 

윤과장은 유치원 입구가 보이는 맞은편 블록 골목에 트럭을 세우더니 핸들에 힘없이 기대어 유치원 쪽을 응시한다. 

오늘은 오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다가 결국 또 이곳에 왔다. 매일 올 수밖에 없다는 걸 윤과장은 안다. 

 

윤과장이 흠칫 고개를 든다.

하교하는 아이들이 통통 튀어나온다. 나비처럼 새처럼 가벼워 보이지만 한없이 무거운 존재들. 

아름다운, 생동하는, 생명으로 넘치는 아이들... 까르륵 웃는 소리가 맑게 메아리친다.

 

이런 순간이면 눈물이 차오르곤 하고, 윤과장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자각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그는 핸들에 머리를 묻고 한참을 그대로 머무르곤 한다.

 윤과장에게 선택지로 주어진 여러 봉사 업무 중엔 보육원, 아동 교통안전 봉사 등도 있었지만 그는 지원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 근처에 가서는 안 될 전과자, 살인자였으므로. 

해서 이곳에서도 그는 숨을 죽이고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이 유치원 원생들 중 경완의 둘째 아이가 있다는 건 처음엔 정말 몰랐다. 

평소엔 하원 버스가 아이들을 태워 가지만 간혹 부모님들이 직접 방문해 아이들을 데려가기도 했다. 경완이 활짝 웃으며 뛰어와서 아이를 번쩍 안아 올리는 걸 보았을 때, 윤과장은 혹시나 경완이 자신을 볼까 봐 좌석 시트 아래로 몸을 황급히 숙였다.

만약 경완이 윤과장을 본다면, 윤과장이 이곳에서 아들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안다면... 

경완은 그의 아버지가 느꼈어야 했을 죄책감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윤과장은 숨는다. 경완의 죄책감을, 경완의 몫이 아니었던 그 죄책감을 자극할까 봐. 그 후로도 가끔 경완 또는 경완의 아내가 아이를 직접 데리러 왔는데, 윤과장은 그때마다 매번 핸들 밑으로 숨었다.

   

하원 버스가 오늘따라 늦는지, 무료해진 아이들이 까르륵 웃으며 천방지축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인솔 교사는 아이들이 멀리 가지 않게 붙잡아 놓느라 진땀을 빼는 중이다. 교사는 아이들을 다시 데리고 들어갈까 고민하는 듯 갸웃거리더니, 대신 입구 옆 도로에 쪼로록 모아놓고 율동놀이를 하도록 유도한다. 놀이에 흥미를 느낀 아이들은 이제 적어도 한 자리에 머문다.

 

평소 윤과장은 지켜보곤 한다, 아이들이 하원 버스에 통통 뛰어올라 승차하고, 마침내는 노오란 버스가 경쾌한 작은 클락션 소리를 남기며 떠날 때까지.

사실 처음으로 이 유치원 하교 장면을 지켜보던 날, 버스가 떠나던 순간 윤과장은 흠칫 몸을 떨었다. 버스를 쫓아 달려가고 싶었다... 유치원 선생을 불러세워 우연히 지나다가 봤어요. 버스는 안전하죠? 미친 척하고 물어보고 싶었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여진 경정의 번호를 눌렀다.

용산서 관할지 00동 00유치원... 위탁 버스회사가 00운수라는 곳인데요... 규정 제대로 지키는지 알아봐주실 수 있나요, 용산서 간부 중에 아는 분 있으신가요.

윤과장은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알았어요, 꼭 알아보고 빠른 시일 안에 알려드릴게요. 한경정님은 차분하게 답했고, 왜 그런 걸 묻는지 묻지 않았다.

윤과장님. 조만간 같이 밥 한 끼 할까요? 

...바쁘시잖습니까. 저도 바쁩니다.

가장 유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가장 올곧고 빛나는 사람, 그 사람의 일 분이라도 뺏어서는 안 된다 생각했다.

늘 거절해왔기에 이번에도 거절할 걸 알면서도, 한경정님은 연락할 때마다 술 한잔 할래요, 또는 밥 한 끼 하실래요, 하고 다정하게 물어오곤 했다.

 

 평소라면 버스가 진작 왔을 시각이다. 윤과장에게 부여된 휴식시간은 이미 끝나가고 있다. 저녁 배식 일정에 맞추려면 몇 분 안에 출발해야만 한다. 그러나 윤과장은 망설이면서도 차마 시동을 걸지 못하고 기다린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새로운 놀이를 하며 신난 함성을 지르고 있다. 

드디어 버스가 도착한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버스에 오르는 걸 윤과장은 턱을 괴고 지켜본다. 활짝 열어둔 창문 너머로 아이들 꺄르륵 웃는 소리가 온통 선명하다. 윤과장은 심호흡을 하며 차가운 공기를 폐 깊숙이 들이마시고, 이제야 비로소 트럭에 시동을 건다. 이제 급식소로 향해야 할 시간이다. 더 지체하면 늦는다. 윤과장은 주차브레이크를 풀고는 조심스럽게 트럭을 골목 어귀까지 몰아간다. 골목 어귀에선 주의깊게 전방을 살핀다. 

 

유치원 버스가 다시금 윤과장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왜 아직도 출발을 안 하는 걸까. 노란 버스는 2차선 도로의 한쪽 차선을 채운 채, 시동이 켜진 상태로 멈추어 있다. 버스기사는 아이들을 태워둔 채 유치원 입구 쪽에 서서 원장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원래대로라면 이제 우회전해야 하는데, 유치원 버스 옆 차선으로 조심히 접어들어 버스를 지나쳐 가는 게 맞는데, 지나쳐서 큰길로 나가는 게 맞는데, 윤과장은 우회전하기 전 잠시 망설인다. 왜일까, 왜 망설여질까. 

사람들은 가끔 이상한 감각을 받을 때가 있다. 뭐가가 뒤틀리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윤과장의 예리한 직감을 건드린다.  

...그런 생각이 스친 건지도 모르겠다. 운전자도 없는 상태에서 맞은편으로부터 눈먼 차량이라도 덤벼들면 어떡하나. 

그래서 왼쪽을 돌아보았던가보다.  

 

윤과장이 순간 숨을 크게 들이켠다. 왼편 긴 경사로에서 주차브레이크 풀린 대형트럭이 소리 없이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다. 운전석엔 아무도 없다. 언덕의 경사가 심한 탓에 무섭게 가속되고 있다. ...유치원 버스와 같은 차선이다.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온다면 유치원 버스를, 아이들이 탑승해 있는 저 조그만 버스를 덮칠 게 분명하다. 유치원 버스의 운전기사는 차에서 내린 채 여전히 대화 중이고, 원장도 기사도 위험을 보지 못한다. 그들을 외쳐 불러도 이미 늦다.

 

윤과장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다. 엑셀을 힘있게 밟는다. 대형트럭이 내려올 예상 진로에 정확히 맞추어 트럭을 정지시킨다.

 

 기어를 P로 옮기고, 주차브레이크를 단단히 걸고, ...이 트럭엔 큰 물통들이며 각종 짐이 가득 들었므로 대형트럭을 어느 정도 멈출 수 있으리란 계산까지 하고...

 

그러고도 조금 남은 시간, 그 영점 몇 초 동안엔... 

...아이들이 놀라겠구나, 그런 생각이 스친다. 

 

 

윤과장은 핸들을 단단히 잡고 자세를 곧게 한다. 

 

 

굉음은 먼 곳에서 들리는 듯하지만 선명한 현실이다. 윤과장은 최근 몇 년 들어 가장 분명하게, 가장 명확하게 현실에 있다. 현재에 있다.

 

 

윤과장은 마지막까지 의식을 붙들어보려 애쓴다. 

시야가 점점 검게 저물어가지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보려 애쓴다. 산산히 깨지고 우그러진 차체 틈으로 바깥이 얼핏 보인다. 윤과장은 아이들이 무사한지, 부딪혀 부서진 트럭이 관성 탓에 밀려간 정도가 유치원에 이르기 전이었는지 파악하려 기를 쓴다. 확신을 갈구한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선혈을 흘리고 있을 신체에 대한 감각은 정신으로부터 그저 유리된다. 

 

 

의식이 아득히 미끄러져나갈 때쯤, 그제야...

겁에 질린 아이들의 비명, 아이들을 차에서 내리게 하는 인솔교사의 고함이 어렴풋이 들려온다. 

 

 

무사하구나, 아가들이, 아가들이 무사하구나.

 뜨거운 눈물이 아스팔트를 마저 적신다. 윤과장은 이젠 편안해진 표정으로, 한없이 무거워진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앉도록 그저 놔둔다.

 

 

마지막으로 스치는 생각은 비교적 평화롭다. 그 긴 세월이 흐르고서 처음으로 편안하다.

 

 

다행이다

내가 이 날을 위해서 살아있었구나

내가 출소하고도 살아있어야 했던 이유가 이거구나

다행이야 -

 

 

 

 

 

 

 

 

 

 

 

 

 

 


 

 

 

 

 

 

 

 

 

 

 

 

 

 

...윤과장은 무언가를 간절하게 찾고 있다. 잃어버린 무언가를.

 

금 간 차창에 어느 젊은 남자의 모습이 비추어진다. 

젊은 남자의 눈빛은 순하다. 고통도 독기도 없이 그저 순하다. 

윤과장은 이 젊은 남자가 젊은 자신, 십수년 전 자신의 모습이라는 걸 자각한다.

 

인간의 뇌는 마지막 순간에 활성화된다던가, 완전히 꺼져 버리기 전에 마지막 불꽃이 유독 환하게 강하게 타오른다고.

 

아아... 내가 마지막으로 담아보고 싶은 기억은,

...아가야, 우리 정민아, 네가 살아 있을 때구나.

 

 윤과장이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아이 이름을 목청이 터져라 부른다.

정민아, 정민아!!!!!!! 

 

갑자기 장면이 바뀐다.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보도블럭 위를 통통 뛰고 있다. 봄볕이 따사롭고,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한창 활기차다. 아이는 버스를 향해 다가간다. 

아버지는 숨이 터져라 아기를 향해 뛰어간다.

 

정민아, 안 돼, 안 돼. 그 버스 타지 마, 아빠랑 있어... 안 돼요, 그 버스 다들 내리게 해!!!

아빠, 걱정 마! 버스 안 탈게!  아이가 이쪽을 돌아보며 또랑또랑 외친다.

 

온 힘을 다해 달려 드디어 아이를 안았다. 윤과장은 아이를 꼬옥 안고 온몸을 떨며 눈물을 쏟는다. 

아빠, 왜 울어, 여섯 살 정민이는 해맑게 갸우뚱거리며 아빠의 뺨을 닦아준다. 조그맣고 보드라운 손바닥이 윤과장의 뺨을 야무지게 문지른다. 아아...이 말랑말랑한 손, 이 조그맣고 부드러운 손. 아이의 고사리손을 감싸는 윤과장의 손이 세차게 떨려온다.  

 

문득 두려워진 듯 윤과장은 아이를 안아올리며 일어서 주변을 둘러본다. 

...돌아보면 버스는 없고, 악몽에서 깬 듯한 기분이 든다. 

 

웬 버스요? 웬 여행? 지금 우리 유치원 하원 시간인데?  정민이 단짝의 어머니가 꺄르륵거리는 딸아이를 안아들고 다가와 말을 건다. 민지야 내일 봐! 정민이가 윤과장 품안에서 고사리손을 흔든다. 부모들이 하나둘씩 아이를 안아들고 제각기 집을 향하는 중이다. 

 

 윤과장이 침착하려 애쓰며 품속의 아이를 들여다본다. 잠겨든 목소리로 속삭인다. 

정민아, 집에 가자. ...아빠랑, 우리, 집에 가자.

 

 

으응 아빠, 나 내려줘. 아이가 윤과장 뺨에 입을 쪽 맞추더니 가슴팍을 톡톡 두드린다. 독립심 강한 정민이는 직접 걷고 싶을 때 내려달라고 이렇게 사인을 보내곤 했다.

 

 

윤과장은 스르르 몸을 굽혀 아이를 내려주고는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춰 아이를 들여다본다.

 

집에 가야지, 우리 집에 가야지, 정민아. 어딜 가게...

 

목소리가 갈라져 나온다. 정민이는 샛별같은 맑은 눈을 반짝이며 제 아버지를 빤히 마주본다. 

 

 

가자, 정민아!

 

이 목소리는...

윤과장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든다. 

 

 

커진 눈을 들어 돌아보면...

 

 

윤과장이 멍하니 속삭인다. 

...영검사님. 

 

 

영은수 검사다. 윤과장이 마지막으로 특임팀의 일부일 수 있었던 그 밤, 그 밤처럼 영은수 검사는 환하게 웃고 있다. 그 미소는 봄볕에 겹쳐 몹시도 선명하게 빛난다.

영검사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든다. 단정히 뒤로 묶은 긴 머리가 봄바람에 가볍게 휘날리고,  

 

베이지색 트렌치코트...

 

...피에 물든 트렌치코트, 깊은 자상, 사라진 맥박, 온통 흐른 피... 그 잔인하디 잔인한 기억에, 무수한 밤 시달린 악몽에... 휘청, 하며 윤과장이 주저앉는다. 

영검사님 장례식장에서 어떻게 제정신인 척 조문을 할 수 있었을까. 특임팀 일행 속에 숨어서 표정을 감추려 애쓰고 또 애썼다. 그러나 절을 하고 돌아서며 영검사님 어머니와 아버지의 표정을 봤을 때, 저의 것과 동일한 그 얼굴을 보았을 때... 윤과장은 깊이를 모를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장례식장을 어떻게 나왔는지를 기억할 수 없었다.  

그날 식은땀을 흘리며 온 밤을 새웠다. 깊숙한 아픔에 울고 또 울었다. 장례식장에서 차마 흘려선 안 되었던 그 눈물을 쏟고 또 쏟았다. 탈수를 겪을 때까지 울었다. 

 

 

영은수 검사가 활짝 웃으며 특유의 잰걸음으로 다가온다. 정민이가 반가운 듯 손을 흔든다. 

 

서로 어떻게 아는 거지, 아냐, 아니야, 아닐 거야. 

 

이 순간에도 윤과장은 정민이의 자명한 죽음을 부인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영은수 검사는 가까이 올수록 어쩐지 어려지는 것 같다. 윤과장과 아이가 있는 곳에 다다를 즈음에는 영검사라는 걸 겨우 알아볼 정도다. 영검사는 이제 똑 부러지는 눈빛의 어린 여자아이가 되어 총총 다가온다. 

 

어린 영은수 검사가 윤과장에게 손을 내민다.

일어나세요, 윤과장님. 

윤과장은 멍하니 손을 뻗어 그 손을 맞잡는다. 그러나 일어나지는 못한다.  

마지막으로 짚어봤던 그 차가운 손이 아니다. 맥박이 멈춘 손이 아니다. 생동하는, 맥박이 힘차게 뛰는 손이다... 윤과장은 말을 잃고 입만 벙긋대며 영검사를 올려다본다. 

어린 영검사가 고개를 살짝 비스듬 기울이며 나지막히 웃는다. 티 없이 맑고 밝은 웃음이 바람에 흩어진다. 

 

 

 정민이가 다가와 윤과장의 목을 꼬옥 안는다. 아이가 마알가니 눈을 깜박이며 아빠를 들여다본다. 늘 그랬듯 그 조그맣고 따스한 손으로, 말랑말랑한 고사리손으로 아빠 얼굴을 꾹꾹 누르며 장난을 친다. 

뭔가를 예감한 윤과장이 떨리는 입술을 달싹인다. 여전히 말이 나오질 않는다. 영검사는 한 발짝 물러서서 여전히 미소지으며 그를 들여다본다.  

 

우린 이제 가야 해요. 결국 정민이가 입을 열어 또박또박 말한다. 

 

온몸의 힘이 풀려버린 탓에 윤과장은 일어나지 못한다. 몸부림쳐 보지만 정민이와 영검사는 어느새 이미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다. 영검사가 다정하게 정민이 어깨를 감싸고, 정민이는 아빠를 향해 고사리손을 열심히 흔들어 보인다. 

 

가지 마, 아가야, 가지 마. 애끓는 외침은 목소리가 되어 나오질 못한다. 

 

 

 

얘들아!

 

자애로운 목소리다. 윤과장이 흠칫 고개를 들자 아이들의 뒤편으로 두 어른의 인영이 보인다. 응, 갈게요! 영검사가 그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다. 

밝은 햇빛을 등에 업어 역광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만으로도 따스함과 넉넉함이 느껴지는, 좋은 부모님이라는 게 느껴지는 이들이다. 

 

 

 

윤과장은 환생이란 걸 믿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천국도 지옥도 믿지 않았으니 윤회는 더더욱 믿지 않았다. 

 

정민인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날 거예요

죄지은 인간들은 다음 생에 지독하게 고생을 할 거야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윤과장은 분노했다. 묵묵히 고개 숙이고 들었지만 때론 뭔가를 집어던지고 싶었다. 

 

함부로 그렇게 말하지 마요...

우리 아기는 이미 죽었어. 그 소중한 한 번 뿐인 생을 잃었어. 

그 어린 것이 그렇게... 죽었어. 그 어린 아가의 마지막이 그토록 끔찍한 순간이었어. 

그런데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해?  

나더러 그런 알량한 허위에 위안을 얻으라고...? 

...그걸 믿는 건 남겨진 사람의 이기적 마음이야. 

 

 

 

그래 놓고서, 그 세월 내내 그래 놓고서, 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게 이거구나... 마지막으로 간절히 바라보고 싶은 게 이거구나.

 

정민아. 아가야. 이 아빠는 참 어리석고도 어리석구나.

마지막까지도, 보고 싶은 걸 보는구나, 이기적으로.

 

...그런데도, 이걸 소원해 보고 싶구나...

 

 

정민아, 아가야. 네 존재의 마지막이 그 아프고 끔찍한 순간이 아니기를.

부디, 부디, ...다시 태어난다는 게 가능하기만 하다면, 부디 다시 태어나 다오. 네 친구들과 다 함께 새 생을 얻어 다오. 그럴 수만 있다면 난 뭐든지 할 텐데. 

아아. 새로운 생이란 게 있기만 하다면, 영검사님도 부디... 그 끔찍한 마지막 순간은 잊고 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원한도 복수도 말고 그저 밝게 똑 부러지게 새 생을 살 수 있다면....

 

 

...정민아, 우리 아가야. 나 같은 못난 아버지일랑 완전히 잊어 다오. 다시는 만나지도 말고 뒤돌아보지도 말고... 좋은 부모님에게 가렴... 부디, 부디, 그렇게 다시 태어나 다오.

그럼 난 억겁의 지옥에 갇혀도 좋을 텐데. 윤회란 게 실재해서, 지옥이란 것도 있어서 나는 영원히 짓찧어져도 좋을 텐데. 

 

 

윤과장은 일어나서 붙잡으려는 시도를 멈추고 슬픈 웃음을 지어보인다. 그제야 정민이는 활짝 웃으며 걸음을 뗀다. 정민이가 자꾸만 제 아빠를 돌아본다. 

아아, 아가야, 우리 아가야. 너의 미소를 내가 어찌 잊겠니.

 

 

오후의 따스한 봄볓 속, 밝은 햇살이 비쳐드는 쪽으로 아이들이 타닥타닥 뛰어간다... 두 작은 인영이 나란히 멀어져간다. 이제 실루엣만 보인다. 

부부가 아이들을 다정하게 안아 올린다... 사랑을 담은 손길이다. 

 

 

아가야, 정민아, 우리 아가야...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하는 울음을 마지막으로 환한 빛과 아이들은 멀어지고... 윤과장은 홀로 어둠에 잠긴다, 머지않아 어둠도, 제 존재에 대한 자각도, 그저 서서히 흩어진다. 

 

 

의식의 빛이 점점 희미해지며 명멸한다. 잠깐 동안 감각이 깨어나는 건 이제 정말로 마지막이란 의미일까. 충돌이 화재로 이어진 것인지 불길이 뜨겁다. 시꺼먼 연기는 이미 차체를 가득 채웠다. 

고통의 감각이 선명하나 윤과장의 의식은 고통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미 그는 더한 고통을 겪어왔다. 

 

 이미 꺼져가는 의식은 한 가지 생각을 계속하여 맴돌 뿐이다. 

 

나는 불에 타기 전에 죽는구나

아가야, 너도 부디 그랬던 거라면.

 

모든 고통 중에 가장 끔찍하다는 그 고통을... 불에 타는 고통을 겪은 게 아니었다면. 

부디 아니었다면.

 

...그렇기만 하다면

나는 수없이 산 채로 타도 좋은걸.

 

 

 

 

 

 

 

 

 

 

 

 

 

 

 

 


 

 

 

 

 

 

 

 

 

 

 

 

 

 

 

 

이건 또다른 영상일까.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가장 소명에 충실한, 가장 생을 유의미하게 사는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시야는 흐리지만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

한여진 경정과 황시목 부장검사. 

걱정을 담은 부부의 얼굴이 나란히 윤과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두 사람이 놀란 듯 윤과장 쪽으로 몸을 숙인다. 윤과장에게 큰소리로 뭔가를 말하는 것 같지만 그 내용은 좀처럼 들리질 않는다. 깨어나셔야 해요, 살아야 해요, 그런 말이 어렴풋이 먼 곳에서 들리듯 웅웅 울린다. 윤과장은 미소를 지어 보이려 애쓰지만 소용이 없다. 

 

아닙니다. 두 분을 믿고 가겠습니다. 

두 분께선 계속... 나아가 주세요. 세상이 나아지게 해 주세요. 

 

 

 

 

 

 

 

 


 

 

 

 

 

 

 

 

 

"아저씨."

"..."

"아저씨!"

"아저씨가 눈 깜박였어요!"

맑고 또랑또랑한 어린아이의 목소리다. 윤과장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아저씨, 아저씨. 정신이 드세요?"

젊은 남자의 목소리. 경완이다. 무겁던 눈꺼풀이 서서히 들린다. 가까이 다가들어 그를 살피는 경완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온다.  

간호사님-! 누군가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정본의 목소리다. 의료진이 탁탁탁 뛰어와 눈에 불빛을 비춰 넣고 말을 건다. 윤과장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의식이 돌아오실 것 같대서 다 모였어요. 얼마 전엔 한경정님이랑 시목이도 다녀갔는데, 그때 눈 뜨셨댔는데 혹시 기억나세요?" 밝은 목소리의 정본이 연신 벙긋벙긋 웃는다. 더없이 환한 웃음이다.

 

"아저씨가 드디어 깨어나셨어."

경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수현아. 수현이랑 친구들 구하신 아저씨가, 이제 드디어... 고맙다고 말씀드리자."  

고사리 같은 손이 불쑥 다가와 붕대 감긴 손을 꼭 붙잡는다. 윤과장이 떨리는 시선을 움직여 아이를 본다. 총명한 두 눈동자가 그를 말갛게 올려다보고 있다. 

 

그제야, 윤과장은 이게 꿈이 아님을 깨닫는다. 감사를 받는 게 본인이 만들어낸 영상일 리가 없다고 그는 확신한다.  

 

살아 있구나,

살아 있어야 했던 이유를 다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살았구나.

 

정민아, 아가야...

아빠가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있나 보구나.

 

 

 

 

 

다시 의식의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희미하게 올라오길 수없이 반복했다. 지지할 곳 없이 부유하는 동안 눈물을 많이도 흘렸다. 정민이는 다시는 꿈에 찾아와주지 않았다.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마비가 풀렸다. 드디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윤과장은 최선을 다해 입술을 달싹여 본다. 마침 가장 가까이 있던 정본이 귀를 기울인다. 

"노숙인 쉼터... 일하러 가야 해요. 저 돌아온다고 말해 주세요..."

"..."

"저랑 서로 얼굴 기억하는 사람들 있어요. 그분들한테 말해 주세요, 제가 거기 버리고 그만둔 거 아니라고 말해 주세요..."

 정본이 아픈 얼굴을 한다. 

"다 말해 놨지. 윤과장님 걱정 많이 하셔요 그분들이... 빨리 나아서 돌아오시라고. 돌아오시는 거 보려고, 딴 지역으로 안 가고 계속 죽치고 기다리는 분들도 있어."

"..."

"아이고... 갓 깨어나신 분이 거기 걱정부터 해? 다 나으시기 전엔 일하는 거 꿈도 꾸지 마세요!"

 윤과장은 이 옛 동료이자 지금의 동료를, 가까이에서 무수히 자주 걱정하고 붙잡아준 사람의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정본이 침대 옆으로 다가앉더니 윤과장 손을 꼬옥 잡는다. 찡해진 표정으로. 

"윤과장님."

"...네."

"고마워요. ...깨어나 줘서, 돌아와 줘서 ."

"..."

 

 

 

 

정본은 윤과장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해주었다. 

의식을 되찾고도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간호사들은 탈수를 걱정하여 상태를 자주 체크했다.

 

감각 없이 흐른 그 시간들의 끝에 윤과장은 힘주어 상체를 일으킨다. 아직 몸이 말을 잘 안 듣지만 어떻게든 일어나 앉으려 애써본다. 

턱쯤까지 흘러내린 눈물의 감촉이 선명하다. 

 

아무튼 살아야겠구나. 

꼭 이유가 있어야 사는 게 아니겠지.

 

아가야... 아가야.  

네가 아빠를 기다릴 거라 생각했어. 

그러지 말아다오. 그러지 않기로 한 거지?

정민아, ...아가야, 우리 아가야.

약속해 다오, 이 아빠일랑은 이제 잊겠다고.

네가 약속해 준다면... 아빠는 이곳에 머물게. 머물다 천천히 갈게. 

어떻게든 살아볼게.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아볼게.

 

 

 

 

 

 

 

 

단편 <살아야 하는 이유> _ 끝

 

 

비밀의 숲 시즌1 15화 초반 윤과장이 버스 안에 있는 아이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며 '자몽아' 하고 불렀더라구요. 아가의 태명이자 별명이었던 것 아닐까요... 

 

 

윤과장이 아이들을 구하는 장면은 드라마 '도깨비-쓸쓸하고 찬란하神' 16화로부터 왔습니다 (혹시 안 보신 분은 스포 조심해주세요).  https://tv.naver.com/v/1393438/list/110095

 



윤과장의 서사는... 극이 극으로만 보일 수가 없어서,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 무게를 계속 기억할 것 같습니다. 

지난해 연말에도 윤과장 생각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들었던 한 수업 맨 마지막 주제가 재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재해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강의자료를 앞에 놓고 너무 막막해서, 먹먹해서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현실의 그 아픔들을 제삼자가 감히 헤아려볼 수 있을까요.  

 부디, 부디 새해엔 안타까운 죽음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막을 수 있었으나 사회가 그에 실패하여 발생한 사고들, 사고가 아닌 그 살인들. 참혹한 고통들을 되풀이하여 양산하는 그 고리가 부디 끊어졌으면. ...암울한 게 사실이더라도 수백의 절망보다 한 줌의 희망을 보아야겠죠...? 어떻게든 새해엔 꼭, 꼭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변화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리새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