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는 아니지만) 늦은 밤, 크리스마스의 유령이 우리를 미래로 데려간다면
어느 평범한 연말의 하루. 크리스마스를 앞둔, 그리고 날씨가 퍽 추운.
2050년대 초 어느 해의 연말
*비밀의 숲 2차 창작글입니다. 시즌1 및 시즌2 내용 스포를 포함하므로 주의 부탁드립니다*
<어느 60대 부부의 연말>
스무 명 남짓한 법전원 학생들이 강의실 조로록 모여앉아 있다. 아직 강의 시작 시간이 아닌데도 다들 미리 왔는지, 필기 준비까지 완벽히 세팅해놓고 교수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바짝 굳어있다. ‘왜 그렇게들 긴장해 있나요? 그냥 수업 듣는 거 아닌가?’ 누군가 그들에게 물어본다면 그들은 원망스러운 눈총을 쏘아댈 것이다.
왜 긴장했냐고? 오늘은 지옥에서 올라온 피드백 시간이거든.
각 학생별 한 학기 동안 제출한 전체 과제들에 대한 총평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각종 오류를 지적받은 학생들은 그걸 수정해서 과제들을 재제출해야 한다. 그 후 최종 평가가 이루어지고, 통과 여하에 의해 학년 이수 여부가 결정된다. 즉, 지적사항을 반영할 줄 모르는 학생들은 유급이다.
이게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건 아는데, 피와 살이 갈려나가는 기분은 어찌할 수가 없는걸. 충격요법이 강력하긴 하다. 지적사항이 머릿속에 아주 제대로 들어박히니. 교수님의 기준은 유독 엄격하다. 피드백에서 교수님 기준을 통과한 과제물의 경우엔 보완 의무가 없지만, 그런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름과 학번은 블라인드 처리된 게 축복으로 느껴질 수밖에. 그러나 블라인드 처리는 때론 의미가 없다. 이 교수님이 다른 학교에 계실 적, 한 명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림으로써 도마 위에 오른 요지문이 자신의 것임을 인증해 버렸다는, 그런 소문이 있다...
정시가 되자, 그들을 그토록 긴장하게 만든 존재가 총총 걸어 단상으로 나온다. 학생들은 기죽은 목소리로 인사한다.
아주 꼿꼿하게 펴진 허리, 특유의 세련된 분위기 덕분일까. 풍모 자체가 기품있고 멋스럽다. 눈주름이 보기 좋게 잡힌 예리한 눈매가 꽤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은회색 머리카락이 반듯한 이마 위에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고, 착장은 검소하면서도 산뜻하다. 60대 후반이나 70대 초반쯤으로 보이나, 운동을 꾸준히 한 사람다운 균형 잡힌 체격, 거기에 가볍고 날랜 걸음걸이가 도드라진다. 검사 시절엔 직접 발로 뛰어 범인을 잡기도 했을 것 같은 분위기다.
교수님은 평소엔 그래도 처음 인사할 땐 부드럽게 웃으시는데-웃는 게 더 무섭지만- 웬일인지 오늘은 웃음기 하나 없다. 굳은 입꼬리와 매서운 눈초리에 학생들은 오싹 얼어붙는다.
오늘이 피드백 시간임을 잊으셨을 리가 없는데, 교수님은 피드백 대신 사례 강의 자료를 여신다. 취업 비리 및 부정 학력 취득의 역사. 강의계획서에 전혀 없던 내용이다. 학생들은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여느 때보다도 빠르게 휘몰아치는 수업이다. 20년대 초반부터, 심지어 지난 세기 내용까지 차라락 빠르게 정리되고, 학생들을 연거푸 지목해서 답변을 시키는 통에 학생들의 영혼이 빠져나간다. 사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학생들은 탈탈 탈곡당한다.
"출발선이 같지 않다면 골라인이라도 같아야 한다, 이런 말을 해놓곤 자식을 부정취업시킨 국회의원이 있었죠, 20년대 초에요. 해당 사례를 레포트에 언급했던 학생들 꽤 있더군요, 언급 취지를 공유해 줄 학생 있나요?"
"입법이든 사법, 행정이든, 나라가 부과한 업무를 맡아서 하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선을 넘어선 안 됩니다. 그 선을 지켜봐야 하는 의무가 있으니까요." 학생의 답변에 교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교수님으로선 아주 드문 칭찬의 표현이라, 주변 학생들이 놀란 표정을 한다.
"자. 오늘은 피드백 시간이죠. 그런데 왜 제가 계획에도 없이 이 수업을 했을까요." 교수가 천천히 강단에서 내려와서 학생들에게 다가선다. "... 여러분 생각을 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교수가 다가올수록 학생들은 얼어붙는다.
"여러분이 사용하도록 지정된 문서작성 툴에선, 쉼표 사이사이마다 잠깐씩 쉬었던 미세한 시간 간격, 특정 단어를 타이핑할 때 걸리는 평균 시간, 내용의 종류에 따른 타이핑 속도까지. 그 모든 특성이 모여 한 사람의 타이핑 풋프린트(typing footprint)를 구성하죠. 누군가 써놓은 문서를 베낀다면 그로 인해 생기는 변화 또한 결국 드러난다는 의밉니다."
"...여러분도 익히 아는 얘기를 제가 왜 할까요, 지금?"
싸늘하다. 학생들 가슴에 뭔가가 날아와 꽂힌다.
"최근에, 해당 시스템을 우회하는 방법을 중국 모 대학 어느 학생이 개발했습니다. 학교 서버에 파일을 올릴 때 악성코드를 첨부함으로써 평가 시스템을 교란하는 거죠. 들어 보셨을 겁니다. ...이 중에 몇 명이 그 코드를 구해다 썼음이 확인됐어요."
헉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다. 학생들이 창백해진다.
"국내에서도 사용 의심 사례가 최근 보고되었고, 우리 대학원은 즉각 서치 툴을 적용했습니다. 모두가 의심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결백한 학생들을 지켜야 하니까요. 이번 학기 뿐 아니라 지난 학기들 과제물도 전면 재검수했고, 당시 통과했던 과제물 중 일부에서 부정이 추가 발견됐습니다."
"그중 한 학생은 심지어, 변호사가 대필한 파일을 그대로 보냈더군요. 베껴 적을 수고조차 하기 싫었나 보군요, 우회 악성코드 심을 정성은 있으면서. ...해당 변호사 누군지 찾았고, 이미 관할 지검에서 영장 발부했습니다."
"여죄 남기지 않겠습니다. 자, 부정 저지른 학생들, 수업 끝나고 집에 가 있으면 징계문 전송될 겁니다. 별도로 내일 아침 일찍 내 사무실로 오고요."
"각자 공범 관계인 변호사가 누구인지, 학교 측 조사 들어가면 낱낱이 밝혀야 할 겁니다. 남김없이 밝히고 재발 방지 프로그램 이수하는 조건으로 정학 및 유급입니다. 거짓과 숨김이 있을 시 퇴학까지 가능합니다."
황교수님이 학교 측 조사위원회를 이끌 것임은 자명하다. 더 나은 적임자가 어디 있겠는가. 너네 다 끝났구나, 한 학생이 중얼거린다. 그 옆자리 학생은 태연한 척하는데, 탁자 밑으론 두 손을 덜덜 떨고 있다.
표정 하나 안 바꾸며, 교수는 피드백 자료를 화면에 띄운다.
"이제 피드백 시작합시다."
교수가 덧붙인다. "대필 보고서도 똑같이 피드백할 겁니다. 고칠 점이 많더군요, 현직이 썼다고 믿기 힘들 만큼 논리가 조악해서."
한 명씩 차례로 제출물들이 도마 위에 오른다. 대형 스크린에 활자 빼곡히 띄워진 제출물은 각 단계별 전개 과정이 깔끔하게 드러나 있고 참고문헌 링크까지 아주 번듯하지만, 교수는 미세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이제 바야흐로 ‘해부’가 시작될 참이다. 논리의 비약, 사례 분석 미흡, 참고문헌 인용 오류... 교수는 가차 없는 지적을 시작한다. 뼈도 못 추리게 하나씩 하나씩. 교수가 손에 든 패드에 펜슬로 슥슥 글씨를 써 내려가면 대형 스크린엔 선명한 빨간 수정 표시들이 계속 추가된다.
물론, 부정을 들켰다는 절망감과 후회에 휩싸여버린 몇 명의 경우엔 이 피드백이 머릿속에 들어올 리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본인이 범인임을 학우들에게 들키기 싫으므로 –어차피 학교 측 조사 진행되고 정학 먹으면 들킬 텐데도, 당장은- 필기하는 척 한다.
나머지는, 방금 몇 명이 말로 능지처참당하는 걸 본 충격에 휩싸인 상태임에도, 피드백 내용 하나하나를 놓쳐선 안 되는 걸 알기에 사력을 다해 필기한다. 시간을 잡아먹은 딱 그만큼 교수는 속도를 높이고, 학생들은 그를 따라가느라 처절하게 노력한다. 기자회견장처럼 타닥타닥 타이핑 소리가 강의실을 뒤덮고, 그 위로 저음이지만 아주 또렷한 교수의 음성이 칼같은 피드백을 쏟아낸다. 모든 수를 다 아는 AI 같으셔, 머릿속엔 빅데이터 분석 툴이라도 있나 봐, 학생들은 종종 소곤거리곤 했으나, 지금은 그런 놀라움을 느낄 겨를도 없다.
정확히 계획된 시간대로 착착 하나씩, 결국 모든 파일이 해부 완료된다.
“끝났습니다. 추가 질문 사항 있다면 내일 제 방으로 오세요.”
다른 어느 학기보다도 더더욱 ‘지옥에서 갓 올라온’ 듯했던 피드백 시간이 끝났다... 학생들은 앉아서 필기만 했는데도 방금 막 전쟁터를 겪은 기분이다. 학생들은 진이 빠져서, 허락만 된다면 땅으로 꺼지거나 책상에 눌어붙고 싶다.
"자, 여러분. 현직이 쓴 보고서를 감별해낼 수 있겠습니까?"
"..." 학생들은 서로 얼굴을 돌아볼 뿐이다.
"안 들키려 일부러 학생 수준으로 쓴 건가? 아니면 변호사로 일하기 힘들 만큼 능력이 부족해서 이런 짓에도 손을 댄 건가?"
교수가 특유의 습관대로 미간을 좁힌다.
"어느 쪽이든... 여러분은 그런 법조인이 되지 맙시다."
학생들이 일순 숙연해진다.
"부탁입니다." 낮은 목소리가 엷은 떨림을 담는다. 교수는 학생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춘다. 책망의 눈빛이라 표현하기엔 복잡한, 착 가라앉은 깊고 고요한 눈빛이다.
"이미 부정 저지른 사람들, 거듭 말하지만, 여죄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잘 들으세요, 여러분에겐...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만약 법조인이 된 후 법을 거스른다면, 그땐 그 어떤 기회도 없습니다. 그대로 끝인 겁니다."
"정학 기간 동안 많이 생각하고 반성해보길 바랍니다, 정학은 그 기회라고 생각합시다. 정학 중이라도, 면담이 필요하면 날 방문하고요."
"오늘 수업 여기까지."
학생들이 작은 목소리로 인사하고 빠져나간다. 복잡한 표정들이다. 그중 몇 명은 유독 안색이 나쁜데, 나가다가 살짝 비틀거린다.
빠져나가는 행렬 후미의 학생 두어 명이 화들짝 놀란다. 강의실 맨 뒷줄에 누군가 앉아 있어서다. 외부인이다.
잔잔히 웃고 있는 젊은 여성. 방금 그 광경을 보고도 웃음이 나오나? 수트 깃에 변호사 배지를 단 걸 보면, 은사를 찾아온 졸업생인가? 이 의문의 인물과 눈이 마주쳤을 때 알 수 없는 기시감으로 몸을 부르르 떨던 한 학생은, 문을 나선 후에야 비로소 그 기시감의 이유를 깨닫는다. 아까 그 사람, 웃는 듯 마는 듯 접힌 예리한 눈매가 교수님이랑 똑같았다. 이건 아예 Ctrl-C Ctrl-V 아닌가.
교수는 무거운 표정으로 교탁에 기대어 서 있다. 여전히 자세는 꼿꼿하지만, 조금 지친 기색이다. 그의 시선은 나가는 학생들 뒷모습을 끝까지 따라가다가, 마침내 맨 뒷줄의 사람에게 가 닿는다.
“은영아!!!” 반가움이 가득 묻어나는 부드러운 외침. 방금까지의 그 엄격하고 매서운 표정은 어디로 가고 다정한 아버지의 얼굴만 남는다. 나이 든 아버지는 활짝 웃으며 장난스레 두 팔을 번쩍 들어 보인다. “웬일이니! 연락도 없이!” 딸이 통통통 계단을 뛰어 내려와 아버지를 살짝 포옹한다. “보고 싶었어요, 아빠.”
“엄만 이번 주말 내내 바쁘신데. 얼굴 제대로 못 뵐 수도 있어.” 딸이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는다. “마약 카르텔 그거 때문에...?” 아버지가 굳은 얼굴로 끄덕이자 딸의 얼굴에도 걱정이 떠오른다.
유독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가족이 공유하는 이런 걱정은... 정말이지 평생의 일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 가족엔 시민을 지키고자 위험을 감수하는 구성원이 둘이나 있다. 기회 될 때마다 직접 발로 뛰는 부산지방경찰청장 한여진 치안감, 그리고 경기도 남부지방경찰청 강력계 2년차 형사 황은헌 경위. “오빠는 드디어 그 살인범 잡았다던데.” “들었다. 일단 푹 자고 나서 통화하자고 해놨어.” “영통이면 나도 옆에서 같이 할래요! 오빠 또 다쳐 놓고 말 안 하면 우리가 찾아가서 혼쭐을 내주자.” “앞으론 안 숨기기로 약속했으니까, 다쳤으면 말했겠지. 은헌이, 약속한 건 꼭 지키잖니.”
“...아빠, 있잖아, 엄마도 오빠도... 늘 진짜 잘하는 걸 믿지만, 그래도 걱정되죠.” “그래... 믿는 거랑 걱정하는 거, 그 두 가진 늘 동시에 하게 되더라.”
건물을 나서기 전 부녀는 호흡기를 꼼꼼하게 착용한다. 작은 모터들이 미세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저무는 해를 가릴 만큼, 오늘따라 스모그가 유독 자욱하다. 아버지는 잔소리를 한다. “너 한 등급 높여야지, 왜 F4등급 쓰니.” “뭐 난 요샌 외근 적어서 괜찮아요, F2나 F3등급은 너무 무거워.” “안 되겠다, 이 앞에 필터 대리점 가자.” 아버지는 부득불 딸을 끌고 가서 호흡기 필터를 업그레이드시켜준다. 그가 가족들 건강을 얼마나 깐깐히 챙기는지 아는 만큼, 딸은 잠자코 따른다. “넌 사람들 건강 지키려 싸운다는 애가, 본인 건강은 그렇게 대충 챙기면 되겠니. 폐 건강은 젊어서부터가 중요해, 대기오염은 매년 심해지는데...” 잔소리에 시동이 걸리자 딸은 국면 전환을 꾀해본다. “아빠! 우리 저기! 저 포차 가자. 나 배고파요.”
“더 좋은 거 먹여야겠는데.”
“튀김 사주면 되죠! 저기 튀김 맛있던데.”
“허효...” 딸이 한 고집 하는 걸 알기에 넘어가는 아버지. 사실 본인도 뜨끈한 우동 국물이 땡기긴 한다.
“아빠, 옛날엔 포장마차가 야외에 있었다면서.”
그때만 해도 공기가 깨끗했지. 지금은 야외에서 호흡기 벗고 뭘 먹으면 폐가 결딴날 게 분명하다.
공기청정 시스템이 가동되는 상가 건물 1층 한쪽 벽에 조그만 포장마차가 차려져 있다. 실내인 만큼 붉은 천막은 필요가 없는데도,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과거 형태가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은영은 포장마차가 엄마 아빠께 유독 특별하다는 걸 안다. 두 분은 근무지가 바뀔 때마다 그 지역에 포장마차가 어디 있는질 꼭 알아보곤 하셨다... 은영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즈음엔, 이미 야외 포장마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부녀는 서로의 잔에 소주를 찰랑찰랑 채워주곤 ‘짠-’ 부터 한다. 은영은 시원하게 원샷하더니 크- 소리를 내는데, 이건 엄마한테 배운 게 분명하다 -아버지는 딸이 귀여워서 피식 웃는다.
“아빠, 아까 보니까 말예요, 그런 과제가 있더라. 한조케미컬 비소 누출 사건 심리 요지문 쓰는 거. 가해자 기업 편 아니면 피해자 시민들 편, 둘 중에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한 거죠?
“맞아.”
“한조 편든 애들이 더 많더라.”
“아빠가 어느 편을 해라 강요할 순 없단다. 논리의 비약을 짚어주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도록 지적하는 것, 거기까지가 내 일 아니겠니.”
“아빠는 뭐랄까... 애들을 갈고 닦아서 예리해지도록 이끌어. 잠재력이 있기만 하다면 그걸 남김없이 끄집어내셔... 근데 기본 신념이 ‘악덕기업이든 뭐든 잘 나가는 데 들어가서 돈 많이 벌겠다’, 그런 애들은 아빠가 예리하게 만들어주면 그 능력으로 가해자 측 변호나 열심히 하겠지. 그렇다고 아빠가 애들을 차별해서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는 딸이 왜 이 얘기를 하는지 안다. 은영의 법무법인은 약자의 편에서 싸운다. 오염물 유출로 건강을 잃은 지역 주민들, 대형의료사고 피해자, 임상실험 부작용 피해자 등... 이런 일을 하는 법인은 드문 데다가 은영의 법인은 규모도 워낙 작기에 일이 참 팍팍하다. 동맹이라도 찾고자 최대한 여러 시민사회단체, NGO들과 협력하며 고군분투해온 게 벌써 2년째.
“선택의 여지는 졸업하기 전까지도, 그리고 이후 사회에 나간 후까지도 계속 열려있지. 내 역할은 기본 소양을 길러주는 것 뿐이야.
"아빠는 직업적 기본 소양만 가르치는 거, 그 이상인 것 같은데? 애들을 사람 만들잖아."
"그게 직업적 기본 소양 준비시키는 거지 뭐겠니. 사람이 안 되고 어떻게 법조인을 하니."
"캬, 아빠 또 명언 하나 제조하셨다." 딸이 물개박수를 친다. "있잖아, 아까 강의실에서 아빠 말씀하시는 거 나 완전 몰입해서 들었어. 녹화해서 전국에 뿌리고 싶었어."
"...아이고." 아버지가 작게 탄식한다. "찍은 건 아니지? 네가 와 있을 줄은 몰랐구나." 딸이 파하핳 웃는다.
고민할 때 나오는 습관대로, 교수는 입술을 매만진다. "음... 결국 선택은 각자의 영역일 게다. 그럼에도 손 놓고 있진 않아, 너희 법인 포함 각종 단체들에서 제공한 사회적 통계 자료들, 애들이 볼 수 있게 올려준단다. 알고 선택하는 것과 모르고 선택하는 건 다르니까. 사람들은 불편한 사실에서 고개를 돌려 버리려는 경향이 분명 있어, 그래도 알 건 알아야 되지 않겠니.”
"음... 완전 동의해요. 아빤 진짜 좋은 교육자셔..."
"아까 애들한테요, 아빠는 도덕적 힐난을 하는 대신, 걔네가 알아야 할 걸 명확히 주지시켰잖아요. 내가 봐온 교수님들이라면 ‘본 교수는 너희들한테 실망했다’하고 화내고, 꼰대력 발산하면서 '너넨 당연히 정의로워야지, 선해야지!!' 막 소리소리 질렀을 텐데... 아빠는 정말 담백하게, 근데 정신이 번쩍 들게 일깨워 주시더라."
“아빤 있죠... 작위적으로 본인의 도덕적 잣대를 우위에 내세우는 일 없이, 묵묵히 꾸준히 정직하게, 행동으로 보이는 거잖아. 그렇게 아빤 선악을 굳이 구분하지 않고도 그저 가장 옳은 길을 평생 걸어오신 거잖아."
아버지가 눈을 크게 뜬다.
"나, 어릴 때부터 아빠랑 엄마 보고 늘 많이 배웠어요. 오빠도 그런 얘기 하더라, 우리가 이 나이 먹고도 부모님 이만큼 존경하는 게 얼마나 드문 경운 줄 아냐고."
아버지가 눈을 반짝거린다. 진지하던 표정에 장난기가 살짝 떠오른다. “딸, 갑자기 이런 칭찬을 하는 거 보니까... 혹시 아빠한테 부탁할 거 있니? 엄마랑 싸워서 화해해야 해?” 엄마 화난 거 달래는 데엔 아빠가 특효약이어서, 사춘기 무렵부터 아이들은 엄마랑 싸우고 나면 아빠한테 알랑알랑거리며 엄마 좀 달래주세요-하고 부탁하곤 했다.
딸이 씩 웃는다. “아뇨, 안 싸웠어.”
“근데 부탁할 거 있는 건 맞아. 나 아빠 상담이 필요해요.” 그 말에, 아버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끄덕, 하며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아빠, 난 요즘 있잖아, 아빠 닮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아버지의 눈이 커진다. 딸은 그와 동일한 유전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확률이 낮다며 의사는 부부를 안심시켰으나 설마는 사실이 되고 말았고, 젊은 아버지는 삶에서 가장 괴로운 시기를 보냈다. 젊은 어머니는 어느 때보다도 강인했다. 본인 눈물은 아껴두고 배우자의 아픔을 다독이며 무게를 나눠 들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더 뭉치는 거야, 힘들 때 일수록 서로를 더 보듬는 거지, 항상 그렇게 말하며 아내는 그걸 몸소 보여줬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은영인 반드시 나아. 점점 좋아질 거야. 그걸 조금도 의심해선 안 돼, 그녀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속삭였다. 부부는 그렇게, 굳건한 희망을 품고 한 발짝씩 용기 내 나아갔다. 끊임없이, 멈추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발전한 의료기술 덕분에 딸은 수술 없이도 질환을 점차 극복해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감각과 감정의 인식 기전을 부분 억제하는 치료가 불가피했다. 뇌섬엽 일부 피질에 억제제를 가했다가 다시 재활시키는 치료요법을 무수히 반복해야 했다. 이를 겪으며 자란 딸은 아버지처럼 감정표현이 잠잠한 편이 되었다. 본인이 갖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걸 내세우는 일이 잘 없었으며, 울거나 화내는 일도 드물었다.
아버지는 딸이 뇌섬엽 치료로 인해 자신을 닮았다 생각하곤 항상 몰래 미안해했다... 그러나 은영은 어려서부터, 본인 성격은 처음부터 본인 안에 있었다, 아빠 성격 역시 원래 아빠 성격이다, 그래서 내가 그걸 아빠한테서 물려받은 거다, 그렇게 굳게 믿었다. 또래보다 많이 어른스럽게 자라난 게 난 좋은걸, 생각하며, ‘차분한 게 얼마나 멋진 건 줄 아니. 엄마가 그런 아빠 성정을 참 많이 사랑한단다.’ 눈을 반짝이며 말해주곤 한 엄마 덕분이다.
“ 애들이 기업 편 많이 들더라는 얘기를 내가 왜 했냐면요.”
“재연 언니 있잖아요. 우리 법인 그만뒀어. 결국은 선택은 본인이 한다는 아빠 말씀, 참 맞는 거 같아...”
서재연, 서동재 검사 막내딸. 은영과 함께 법인을 시작하기로 했을 때, 재연은 본가에서 쫓겨난 바람에 잠시 은영네로 와서 신세를 졌다. 은영, 은헌, 부모님까지 서울에서 한집에 지낼 적이다.
밤늦게 서동재 변호사가 찾아와서는 숫제 통곡을 했다. “아이고 재연아아!!! 왜 검사도 로클럭도 빅펌 변도 다 할 수 있는 네가 인권변호사 따위를 하냐. 내가 너 서울대 어떻게 보냈는데, 게다가 너 설로까지 나왔잖아, 니가 변호사 할거면, 응? 빅펌을 가야지... 첫 경력이 얼마나 중요한 줄 아니? 알아??" "우리 딸, 사회 정의가 중요하면 검사를 하자!! 응? 아빠처럼 부장 단 다음에 변호사 하면...”
“아빠, 내가 아빠 원 풀어드린 건 설로 간 거까지로 합시다. 내 인생 내가 살아요.” 어머니 이유안의 침착함과 단호함을 빼닮은 재연은 좀 듣다 말고 제 아버지 말을 끊어버렸다. 그때쯤 재연 아버지를 잡으러 온 재연 어머니가 은영 부모님에게 허리 굽혀 사과했다. “늦은 밤 시끄럽게 해서 면목이 없습니다... 방 구할 때까지 얘 며칠만 부탁드릴게요, 시목씨 여진씨 바쁘신데 내가 진짜 미안해요. 딸내미,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 이따 통화하자.” 그 말을 끝으로 재연 어머니는 남편을 우악스레 잡아끌고 사라졌다.
은영과 재연 사이엔 역사가 길었다. 어린 시절부터 퍽 자주 본 데다 학부부터 법전원 시절까지 쭉 붙어 다녔으니. 친구이자 자매 같은 사이였다. 더불어 나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는데... 딸이 오랜 동행을 잃었다는 소식에 아버지는 걱정 가득한 얼굴빛을 한다.
“예고 없이 그만둔 거니...? 이유는 뭐래.”
“혼자 고민을 꿍쳐놨었나 봐. 혼자 결정 내린 후에야 말하더라... 아, 재연 언니네 아버지 때문은 아니래. 본인 때문이래.”
은영이 고개를 폭 숙이고 미간을 꼭꼭 문지른다. “피해자들을 만나는 게 너무 괴롭대. 아프고 힘든 피해자들 보다 보면 본인도 우울해진대.”
고개를 번쩍 든 은영의 표정이 굳어있다. “난 그런 게 없어요. 그냥 해야 할 일이어서 하는 건데.”
“그런 내가 운이 좋은 걸까. 감정이 무딘 게, 난 다행이야.”
“...네가 감정에 무딘 건 아니지. 늘 말하지만, 사람마다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거잖니.”
“그치?” 딸이 씩 웃어 보인다.
“그럼 일부 부정적인 감정들에 있어서 다소 덤덤하다, 이걸로 정정할게. 아빠도 딱 그렇잖아, 우린 참 닮았어요.”
아버지가 살짝 끄덕이며 엷게 웃어 보인다.
“있잖아, 언니는 미안하다고 막 우는데 난 눈물 한 방울 안 나고... 언니 나간 자리 누굴 데려다 채울까, 인수인계에 며칠 걸릴까 그 생각만 하고 있었어.”
“어려서부터 너, 책임감이 오죽 강했니. 지금 네가 속한 법인을 위해 필요한 대응을 잘 하고 있는 거야. 네가 흔들리면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니.”
“그쵸... 근데 있잖아, 재연 언니랑 8년이에요 나. 그런데도 내가 너무 멀쩡하다고 사람들이 신기해해.”
“남들 눈은 신경 쓰지 마라. 참... 시대가 변해도 그건 여전하구나, 굳이 ‘보통’의 기준을 세우고 배타적 시선을 던지는 거.”
“그러게... 근데, 알잖아요, 나 신경 안 써. 내가 누구 딸인데!” 은영이 살폿 웃는다.
"아빠, 있잖아요. 지금 세상이 차암 그렇잖아, 갈수록."
은영이 유리 밖을 가리킨다. 이젠 어둑해진 밖에, 그새 더 심해진 스모그가 반대편 건물 빛도 차단한다. 가로등 주변이 달무리처럼 부옇게 빛난다.
"스모그 때문에 해마다 몇 만 명이 일찍 죽는데, 기업들은 집진시설을 없애는 추세잖아, 전기료 아낀답시고. 이익이 벌금보다 크다 싶으면 다들 법을 어겨. 기업들은 점점 표독스러워지고 검경 비리는 점점 심해지고."
"힘들게 변화해왔던 것들이... 다시 역행하고 있지."
"이런 생각들을 매일 해요. 안 할 수가 없으니까. 근데도 있죠, 나 괴로움에 잠식되지 않을 자신 있어요."
"장하다." 아버지가 속삭인다. "아무리 세상이 캄캄해도 잘 나아갈 거라 믿어. 이 말이 생각나는구나...'수백의 절망보다 한 줌의 희망이 낫다는 믿음으로.' "
은영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어떤 분이 해 주신 말이야. 한참 전에 돌아가신 분이, 꿈에서."
아버지 눈빛이 아득하다. 은영은 잠자코 소주잔 두 개를 새로 채운다.
“아빠 있잖아, 아빠 젊을 때 지검 전체를 따돌리고 그랬다며? 엄마가 그러시던데.”
"음... 일터에선 원래 혼자가 편한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지 뭐." 아버지가 눈을 깜박이며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딸이 깔깔 웃는다.
“아빠가 평생 해온 일을 난 참 존경해요. 평소에 표현은 별로 안 했지만. 내 진심이야. 그리고 난, 아빠 닮은 덕분에 내가 있는 길 흔들리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게, 그게 참 다행이야.”
아버지의 얼굴에 쑥스러움과 감동이 담긴다.
“너 오늘 분명히 뭔가 있는데. 아빠 칭찬을 연이어 두 번이나 하다니...” 아버지가 갸웃 고개를 기울인다.
딸 표정이 다시 심각해진다.
“아빠. 있잖아요. 평생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잖아. 직업적 소명에만 충실하면서.”
그 말에 아버지는 생각에 잠겨, 낮고 부드러운 음... 소리를 낸다.
“사랑과 직업적 소명은 상충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보강한단다. 두 가지 모두에 최선을 다해 충실해지는 거지. 가장 이상적인 관계에서는.”
“엄마 아빠 보면서 나도 그런 거구나 싶었지...” 은영이 포슬포슬 웃는다. “근데 아빠. 있잖아, 아빤... 엄마랑 어떻게 ‘확신’이 생겼어?”
아버지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갸웃한다. “... 너, 찬슬이랑 진지한 얘기 나눠보려고 준비하는 거니?” 찬슬은 은영의 오랜 연인이다.
“응. 바로 눈치채시네.”
“상대가 누구인가에 대한 확신은 이미 있고, 지금 네겐 너 자신의 마음에 대한 확신, 그게 필요한 거지?”
“아빠 참 예리해... 역시 아빤 날 잘 아네.”
아버지는 최선의 대답을 해주기 위해 곰곰 생각에 잠긴다.
“사실... 아빠한테 꼭 듣고 싶었어요. 오빠도 엄마도, 참 감정이 강렬하고 투명해. 근데 난 분명 아빠를 많이 닮았거든. 찬슬인 나한텐 너무 벅찬 사람인데... 혹시라도 걔한테 상처를 줄까 봐서. 결혼을 약속하는 건 관계에 있어 비가역적인 도약이잖아, 그래서 난 그 얘기가 나올라치면 늘 조심스러워... .”
아버지가 딸의 눈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아버지의 눈매는 부드러운 웃음을 담고, 생각에 잠긴 눈동자는 고요하고 깊다. “네가 그 사람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는 걸... 어느 순간 느끼게 될 거야. 아빠한텐... 그걸 알았을 때의 그 벅찬 감정은, 그렇게 강렬한 감정은 처음이었단다. 어느 순간 확신이 들 거야. 정말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그게 너무나 선명해질 거야.”
"...!"
“너희 어머니가 늘 해주시는 말씀이 있단다. 세상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있다고, 사랑이 격정으로 표현되어야만 한다고 생각지 말라고, 은근하고 꾸준한 사랑이 어쩌면 가장 강렬한 사랑이라고. ...은영아, 네겐 사랑을 할 자질이 충분해. 아빠 눈엔 그게 보여, 찬슬이도 그걸 분명 아주 잘 알 테고.” 아버지가 부드럽게 덧붙인다.
딸이 살짝 눈물을 글썽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고마워요 아빠.”
“아빨 보렴. 아빤 분명 후회 없이 남김없이 표현하면서, 그렇게 사랑해 왔고 사랑하고 있잖아, 엄마를.”
“그러네, 난 그런 아빨 빼닮았고. 그것만으로도 나 스스롤 좀 더 믿어도 되겠다.”
"그래. 그럼."
"있죠... 내가 느낀 걸 더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찬슬인 늘 참 자연스럽게 표현을 잘 하는데. 찬슬인 엄마랑 같은 과예요, 엄마랑 그렇게 짝짜꿍인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라니까. 난... 말빨로 일하는 변호사면서도, 자꾸 생각이 복잡해져서 말이 짧아지곤 해. 생각이 너무 많은 게 문젠가 싶기도 하고."
"아빠도... 내가 왜 그땐 처음엔 그렇게 확신을 갈구하며 스스롤 묶어뒀나, 저어했나, 그런 생각이 들어. 그치만 물론 그땐 고민을 해야만 했단다, 그 고민이 헛된 게 아냐, 어쩌면 꼭 거쳐야 할 과정이겠지..." 딸이 곰곰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한테 물어봐 줘서 고맙다. 음... 처음으로 이런 질문 하는 걸 보면, 네가 참 많이 좋아하는 것 같구나, 찬슬이."
딸의 눈이 커지면서 반짝거리자, 아버지가 끄덕인다. "네 안목 믿어."
"아빠... 고마워." 딸이 아버지 손을 포옥 잡는다. "아빠, 고마워. 서울 돌아가면 찬슬이랑 얘기 길게 해봐야지."
아버지는 얼굴 가득 부드럽고 환한 웃음을 담는다. 눈가 주름이 보기 좋게 잡힌다.
갑자기 딸이 손뼉을 딱 친다. "아빠 우리! 이런저런 옛날얘기도 나온 김에, 오랜만에 앨범 볼까?"
두 사람은 곧장 집을 향한다. 자녀들은 장성하여 출가한 지 오래이기에, 2년여 전 부산에 둥지를 튼 부부가 빌린 집은 신혼부부용 소형 아파트였다. 청렴결백의 살아있는 표본들 아니시랄까 봐, 집은 놀랍도록 검소하다. 그러나 작아서 더 아늑한 공간이다. 삐뚤빼뚤한 그림들과 책, 식물 화분들이 있는 포근하고 따스한 공간. 이곳에 자녀들 방은 없기에 가끔 와서 자고 갈 때면 거실 소파를 써야 하지만... 은영의 마음 한켠에 이곳은 '그리운 우리 집'으로 저장되어 있다.
아버지가 신중한 표정으로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연다. 연도별, 월별로 차르륵 정리된 폴더들이 정갈하다. 정주행할까요, 오랜만에? 딸이 소곤거린다.
뇌전도 측정기를 착용한 작은 아기 사진이 있는 페이지에 아버지 눈길이 한참 머무른다.
딸이 치료실에 들어갔을 때마다, 부부는 창백한 얼굴을 서로 기댄 채 밤을 새웠다. 나 때문입니다, 젊은 아버지가 속삭였을 때, 젊은 어머니는 그의 눈물을 힘주어 쓱쓱 닦아줬다. 헛소리 하지 말고! 정신 차리면 호랑이가 물어가도 살아. 그니까 정신 단단히 붙들자, 우리.
흔들리지 않는 빛의 존재는, 어둠이 더는 어둠이 아니도록 했다.
"아빠 또 우신다."
아버지는 그제야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깨닫는다. 은영이 손에 쥐고 있던 휴지를 건넨다. 아버지가 눈물 괸 채 미소 짓자, 딸도 결국 또르르 눈물방울을 떨군다.
"참, 부녀가 청승이다, 뜨신 밥 먹어 놓고." 은영이 농담을 한다. "밥은 아니지. 면 먹었잖아." 아버지가 응수한다. 부녀는 울다 말고 웃는다.
"있잖아 아빠, 난 절대 억울하지 않아요, 그 과정 거친 게. 음... 오히려 난 좋아. 또래보다 더 성숙하단 말 많이 듣거든요. 아빠도 동의하죠?"
"그럼."
"...기억 안 날 만큼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 오빠가 계속 말해줬잖아, 나 비정상 아니라고, 세상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는 거라고. 그래서 난 진짜로 괜찮았어... 난 오히려 오빠한테 좀 미안한데. 오빠는 나 때문에 어려서부터 철이 들었잖아."
"은헌이도 너도... 정말 용감하고 강해... 늘 놀랍단다."
은영에게도 이명의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 그러나 늘 부정적 감정을 미리 잘 해소했기에, 자라나면서 이명을 느낄 일이 거의 없었다. 기억에 남은 건 딱 한 번 뿐이다, 북적이는 놀이공원 한복판에서 미아가 될 뻔했을 때.
엄마 아빠를 영영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불안감이 휩쓸었을 때 처음으로 격렬한 이명을 겪었다.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쓰러져 몸부림치던 그 몇 분이 억겁처럼 길었다.
"그때 아빠가 꼭 안아줘서 금방 좋아졌어. 난 울음 바로 그쳤는데 아빠가 진짜 오래 울더라..."
가슴이 저릿해서 -아직도 그날을 돌이키면 덜컥해서- 아버지 미간이 괴롭게 좁아진다.
놀이공원 한복판에 주저앉아 은영을 안고 울던 그 날이 아직도 선명하다. 품속의 딸이 무사한 걸 알고도, 딸의 이명이 잦아든 걸 알고도 온몸을 떨며 펑펑 울었다.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수없이 중얼거리며. 그런 그의 어깨를 아내가 감쌌다. 괜찮아, 우리 딸 무사하니까, 울지 마... 그를 달래며 아내도 울었다. 함께 울었다.
"아빤... 아빤 어땠어."
"음?"
"엄마 만나기 전의 아빤. 그때 아빠한텐 그런 말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좀 달라도 괜찮다고, 이상한 거 아니라고."
아버지는 대답 대신 눈만 깜박이며 엷게 미소 짓는다. 없었지, 하나도 없었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한참을 살았어. 빛이 뭔질 모르면 어둠이 어둠인 줄도 모른단다.
"아빠 많이 외로웠겠다..."
"괜찮아. 엄마 만났잖니, 너희들이 와줬고."
"다행이야. 아빠랑 엄마가 만나서."
다행 그 이상이지. 음... 어떠한 한 단어에 그 벅찬 감정을 담을 수가 없구나. 그걸 담기에 충분한 표현이란 아마도 없겠지, 언어란 게 생각보다 한계가 뚜렷하단 생각이 든단다, 이럴 때면.
"...정말 다 컸구나, 우리 딸. 아빠 생각도 이렇게 해주고. 아빤 완전히 극복했어. 엄마랑 함께하면서, 함께 너희들 키우면서."
“...!”
"더없이 벅차단다, 삶의 굴곡을 그렇게 같이 거쳐온 게. 손을 잡고 같이 나아가고 있다는 게."
아버지가 두 분 신혼 시절 사진들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동안 은영은 웃으며 아버지를 본다. 참 우리 아빠만큼 지고지순한 사람이 또 있을까.
나도 찬슬이한테 이런 사람일 수 있을까.
"엄마아빠 같이 일할 때 어땠어요?"
마침 아버지는 엄마아빠가 처음 공조할 때 동료들과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최고의 동료, 완벽한 파트너."
"그거 엄마 대사지?"
"맞아. 더없이 맞는 말이고."
은영이 입꼬리를 씩 올린다.
"음... 있잖아요, 두 분이 이러케, 그니까, 사귀시고 결혼하시고. 그 후로도 공조 여러 번 하셨잖아. 한조 특임도 그렇고."
"그랬지."
"일터에선 어땠어요?"
"일터에선 일에만 집중. 그만큼 집에선 더 표현하고. 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던걸."
"역시...! 흠, 그럴 자신 있어요, 찬슬이랑 나도. 프로페셔널하게 잘 할 수 있어."
"같이 일하게 된 거야??"
"굿 뉴스!! 찬슬이, 우리 법인에 취직했어." 찬슬은 웹 디자인 프리랜서로 쭉 일해왔다. "홍보팀 디자인 책임자로. 이제 어떤 분야에서도 시각요소가 빠질 순 없잖아,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려야 해요." "아, 내가 일부러 자리 만들어서 뽑은 거 아닙니다? 회의 거쳐서 공모한 거고, 찬슬이 능력으로 붙은 거예요." 은영이 덧붙인다.
"당연히 그랬겠지."
"내가 누구 딸인데, 공정하지. 그쵸?"
"그럼."
"암튼 찬슬이 이제 정규직이에요...!" 딸이 마치 어떤 인정을 구하듯 나직하게 말한다.
아버지는 놀란 듯 눈을 깜박인다. "내가 그런 걸 걱정하겠니. 원래 예술 하다 보면 고정된 직장이 없을 수도 있는 거지, 그런 측면을 생각해본 적은 없단다."
그 말에, 딸이 안심한 듯 작게 끄덕인다.
"아빠가 그래도 최빛 교수님보단 신세대시지."
"뭐라고 그러셨길래?"
"남자는 자고로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게 최고라시던데?"
"하효..."
은영이 즐거워한다.
아버지가 딸 얼굴을 살핀다. 일할 때처럼 진지한 얼굴이다.
"은영아. 네가 이만큼 진지한 걸 안 이상... 아빤 찬슬이랑 얘기를 더 나눠보고 싶구나, 너희만 괜찮다면. 물론 아빠가 개입할 권리는 없지. 결혼은 너희 결정인걸. 단지 아빤 예비 사위랑 좀 친해지고 싶은 거야. 믿음이 더 생기게."
"아빠 왜. 내 안목 믿는다면서."
"물론 네 안목을 믿지만 말이다, 부모 마음이란 게... 아빠가 그랬잖니, 신뢰와 걱정은 같이 가는 거라고."
"그 멋진 대사를 이런 데에 써먹습니까?" 은영이 입을 뾰족 내민다. "엄마는 진작부터 바로 넘어오셨는데, 아빤 호락호락하지가 않으셔, 참."
"엄마가 과연 객관적이실 수 있을까?" 아버지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벽에 걸린 액자들을 가리킨다. 크흠, 큼. 은영이 헛기침을 한다.
엄마의 작품들과 나란히 찬슬의 그림들이 걸려있다. 은영네 가족사진을 캐리커처로 리메이크한 그림, 활짝 웃는 은영 초상화, 심지어는 용산경찰서 전경을 담은 풍경화까지. 찬슬은 화가로 등단하진 않았지만, 실력만큼은 녹슬지 않았다. 그림은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그린다고.
그림을 둘러보며 고개 절레절레 흔드는 아버지. 못마땅한 듯 입을 꾹 물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다.
“참... 볼수록 여우 같은 친굴세.”
“아빠!”
“아니, 아니, 똑똑하다는 뜻이야, 여우가 얼마나 지능이 높은지 아니?”
째릿 하는 딸, 껄껄 웃는 아버지.
은영이 씩 웃는다. 액자 가장자리를 애정 담아 살살 문지르며.
이 그림들이 단순히 엄마한테 잘 보이느라 바친 뇌물이 아니란 걸 안다. 이 사람이 엄마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아니까.
은영의 예비 사아버지, 그러니까 찬슬의 아버지에겐, 경찰로서의 삶을 시작하던 시기 멘토가 되어주었던 게 우리 엄마였다고 한다. 한여진 경위님이 해주셨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강렬하게 남았다고 한다. 엄마가 일터를 옮긴 후로도 계속 인연을 이어갔고.
엄마는 주변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습관을 그때부터 갖고 계셨다는데, 찬슬의 아버지는 그때 받은 그림들을 지금껏 가보처럼 모셔놨다고 한다. 순창 고추장, 지켜보고 있다- 그 그림은 거실 한복판 액자에 담겨 있는데, 놀러 갔을 적에 은영도 많이 봤다.
사실, 엄마의 그림은 엄밀히 말하면... 재능이 담긴 그림은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따스한 사랑과 참신한 표현방식만큼은 지상 최고지만... 그림으로서의 그림 자체에 대해 은영이 솔직한 평가를 하면 엄마는 째려보곤 했다. 그래도 은영 집 책상엔 엄마 그림들이 붙어있다. 특히 입시 치를 때 힘내라고 그려준 그림은 코팅해놓고 늘 일터 본인 자리에 붙여둔다.
찬슬에겐 아주 뚜렷한 재능이 있다. 화가이자 미술 지도자인 예비 시어머니를 닮은 덕이다. 예비 시아버지는 은영의 엄마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엄마가 농담으로 한 헛소리들도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였다고 한다. 엄마는 ‘나 예술인 만날 거다, 형사랑 예술인, 상극의 조화-! 얼마나 좋니! 고추장 너도 소개팅 하거들랑 예술 하는 분 만나봐’ 하고 두어 번 농담했는데, 그걸 곧이곧대로 듣고 정말로 미대 대학원생을 만났다고 한다. 둘이 결혼까지 골인하기까지 내가 꽤 도와줬지, 엄마는 뿌듯해하시곤 한다. 예비 시아버지 기억은 다르다. 에이, 연애 조언은 제가 해드리는 쪽이었죠. 두 분의 티키타카는 흐뭇한 웃음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야 고추장아, 그땐 생각이나 해봤냐. 우리가 사돈이 될 줄은."
어린 시절부터 가족끼리 종종 만났으니, 한 살 터울인 은영과 찬슬은 퍽 친했다. 찬슬이 같은 대학에 오자, 엄마는 은영더러 잘 챙겨주라 당부하셨다. 챙겨줄 게 많긴 했다. 대학에 일찍 간 탓에 은영은 당시 이미 졸업반이었으니, 한 살 어린 새내기가 한참 동생처럼 느껴졌다. 뭐, 어쩌다 보니 시작했다. 늘 찬슬이 대시하는 쪽이었고 은영은 천천히 마음을 열었다. 그렇게 같이 쌓아온 둘의 시간이 어느새 5년째다.
찬슬은 회화 실력이 무르익자 선물 공세로 엄마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무한한 존경심은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까지 대물림되어, 사위는 장모를 정말 많이 따른다. 엄마에게 선물할 그림들을 그리며 찬슬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했는지 은영은 직접 보았다.
두 사람이 본격 사귀기 전부터도 엄마는 찬슬을 몹시 아꼈다. 엄마 말로는 ‘고추장을 빼닮은 싹싹함’이 있다나. 아, 예비 시아버지를 ‘고추장’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분 성함이 ‘박순창’이기 때문이라 한다. 순창고추장이 해외지사를 냈을 때, 엄마는 우리 고추장 이제 글로벌 고추장이야, 하고 놀려대시곤 했다... 찬슬이 다 크고 나자, 찬슬 이름을 두고 ‘고추장 아들 소주’라고 농담을 하시기도 했다... (세상에).
은영은 애꿎은 참X슬 브랜드명을 탓했으나, 넉살 좋은 찬슬은 깔깔대며 즐거워했다.
“에이, 소중한 사위 별명으로 ‘소주’는 약하지 않습니까?" "음. 그럼 새로 찾아보자. 아!! '고추장 아들 고량주' !!” 그때부터 별명은 ‘고량주’가 됐다. 성이 고씨에, ‘추장’ 아들 ‘량주’란다. 찬슬이 엄마 선물로 고량주를 들고 와서 둘이서 한참을 깔깔대는 기막힌 일도 있었다. 참, 둘이 죽이 아주 잘 맞는다. 하효... 은영이 한숨을 쉬었다. 엄마는 나랑 얘랑 싸우면 사위 편을 드실 게 분명해.
"아빠 서울 곧 한번 올라간다. 올라가서 할 일이 있어- 은헌이도 보고. 너희 둘도 볼 수 있겠니?"
아빤 역시 주도면밀하시지. 은영이 눈을 깜박거린다.
"알았어요- 근데 찬슬이 무섭게 대하진 마, 겁주지 마세요."
"내가 무슨 겁을 주겠니?" 아버지는 더없이 선량한 얼굴로 눈을 깜박거린다.
은영이 미심쩍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빠 평생 검사로 일해오신 게 어디 가나..."
"학교는 방학 시작하고, 엄마는 바쁘시고. 이 아빠가 좀 외롭고 심심해져서 너희들 보러 올라가도 안 만나주겠다 이거지? 그래... 오빠만 만나고 가마." 눈썹을 들어 올려 불쌍한 표정 지어 보이는 아버지. 눈빛에 장난기가 어린다.
딸이 빵 터진다. "세상에, 언젠가부터 아빠도 그 표정 써먹으시더라. 엄마한테 배운 게 분명해. 이럼 내가 못 당하지. 알았어요, 항복...!"
아버지가 씩 웃는다.
"날짜 잡읍시다. 아빠, 근데 약속 하나만. 취조 하지 마세요, 취조. 찬슬이 마음 여려. 알았죠?"
"내가 취조를 왜 하니."
"그리고, 심심해서 우릴 만나? 에이. 감시의 눈초리를 번뜩이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해요." 크흠 흠. 아버지가 헛기침을 한다. "아빠가 심심해질 리 없단 건 내가 아는데. 항상 뭘 새로 배우시잖아. 아니, 우회 잡아내는 툴은 언제 배우셨대?"
"음? 아빠가 했다고 안 했는데?"
"아빠가 했잖아요."
"...어떻게 알았니?"
"엄마가 얼마 전에 그러시더라, 아빠 간만에 공부할 거리 생겨서 신나셨다고. 아빠도 차암 대단해, 툴 다루는 건 언제 그렇게 느셨어요? 아빠 세대엔 엑셀 정도만 잘 쓰면 충분했잖아."
"노화 방지지 뭐." 아버지가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농담하고, 딸은 껄껄 웃는다.
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아버지 눈이 반짝거린다.
"엄마 마중 나갈 시간이다." 딸이 씩 웃는다. 아빠 참 사랑꾼이라니까.
"같이 갈 거지?" "당연하죠."
"기온이 많이 떨어졌어." 청장의 다정한 남편이 걱정스럽게 중얼거린다. 보온병에 뜨거운 차를 따르는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두 사람은 곧 부산지방경찰청 로비에 들어선다. 엄마 만나는 게 얼마 만이지? 은영 볼에 홍조가 돈다.
고령화로 인한 경찰 정년 연장은 엄마껜 더없는 희소식이었다. 정년이 예전처럼 만 65세였던들 이번 청장 임기를 마치고 퇴직이셨을 텐데, 그럼 많이 힘들어하셨을 게 분명하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아직 경찰로서 할 일이 한참 남았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총경 시절엔 중대범죄수사부 과장, 치안감 승진과 동시에 수사국장도 거쳤지만 그 이후론 쭈욱 지방경찰청장직을 자원해온 엄마다.
부산지방경찰청에 현장을 잘 아는 청장이 필요한 시기임은 분명하다. 사회가 어지러워질수록 혼란을 이용해먹는 조폭들이 우후죽순 뭉치기 시작했고, 부산은 그게 가장 심한 도시 중 하나였으니.
은영은 어머니가 조폭 초토화에 성공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엄마보다 적임자가 있을까. 우리 엄마라서가 아니라, 진짜 뛰어나시니까. 본청에서부터 행정효율 혁신 신화의 주역 아니셨던가, 게다가 오랜 현장 경험으로 특히 마약 분야에선 손꼽히는 전문가다. 뛰어난 전략과 기민한 대응, 결단력, 부하들이 일심동체로 따르도록 만드는 리더십까지. 물론 이 표현들은 다 아빠 입에서 나온 거다. 아빠는 아이들 앞에서 엄마가 어떤 분인지 진지하게 설명하다가 엄마한테 등짝을 맞으시곤 했다. 에이, 애들한테 뭐 그런 소리를 해, 쑥스럽게! 그러면서 엄마도 종종 아빠 얘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은영이 엄마 무릎을 배고 누워 눈을 반짝거리면 엄마는 장난스럽게 은영 앞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음, 오늘은 언제 얘기를 들려줄까? 인천지검, 그니깐 엄마랑 세 번째로 공조했을 때! 아니, 순서를 외웠어?
아빠는 검사로서 정년을 꽉 채워 퇴임했다. 서부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서의 임기를 마지막으로. 아빠는 다음 직업으로 교육자를 택했고, 엄마 일터가 바뀔 때마다 엄마 관할지에 가장 가까운 대학에 지원했다. 남들은 왜 지방대만 가냐, 어떻게 모교 오퍼를 거절하냐 의아해했지만, 아빠껜 망설일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로비를 지키던 순경이 청장님 부군을 알아보고 경례를 붙인다. 짧은 묵례가 돌아온다.
"청장님 나가 계신가요?"
순경이 걱정 어린 표정 짓는다. "저... 강력계 거의 전체에다 마약반, 특별수사팀까지 다 같이 출동했는데, 청장님께서 직접 지휘하러 나서셨습니다. 본거지를 드디어 털었는데... 놈들이 총도 갖고 있대서 기동대까지 투입됐습니다. 이제쯤 들어오실 텐데..." 청장의 딸과 남편 얼굴에 걱정이 가득 찬다.
초조한 십여 분이 흐르고, 갑자기 청 바깥이 소란스러워진다. 부녀는 급히 창가로 향한다. 속속 도착하는 호송차량과 기동대 차량들 한가운데에 서서 이것저것 지시하는 위풍당당한 한 사람, 그들 모두의 대장.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아- 하는 안도의 한숨이 두 사람에게서 동시에 터져 나온다.
로비를 가로질러 성큼성큼 빠르게 걷는 청장 뒤로, 한 중대쯤 되는 기동대원들, 형사들이 마약 조직원들을 꽉 붙들어 끌고 들어온다. 몹시 시끄러온 통에 은영과 아버지는 문 옆으로 살짝 비켜서서 지켜본다.
험상궂은 인상에 명품으로 도배된 놈이 보스인 듯한데, 그 주위의 따까리들은 끌려가는 와중에도 그를 향해 충성을 외치는 중이다. 형님께 해가 되는 진술을 하느니 죽겠다는 둥, 제 입은 천 근이라는 둥. 보스 또한 이 상황에서도 제 따까리들 앞에서 체면을 세울 요량인지, 한껏 고개를 빳빳이 쳐들곤 영화 주인공이나 된 듯 오만한 표정을 짓는다.
보스는 제 양팔을 붙들고 가는 형사들을 떨쳐내려는 듯 거대한 몸을 팍팍 힘주어 비튼다. 잠자코 따라오시죠- 형사 한 명이 경고하자, 보스는 그녀를 노려보며 비열한 말투로 뇌까린다. "짭새야, 주둥이 다물어라. 새파란 게 어디서...''
바로 그 순간,
"얻다 대고 주둥이야아!!!!!!!!!!!"
청장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목청이다. 예사롭지 않은 분노가 느껴져서, 형사들 일동까지 굳어버린다. 조폭 따까리들은 움찔 하며 눈치를 본다. 소란하던 사위가 일순 조용해진다.
대열 맨 선두에 있던 청장이 천천히 돌아서서 뚜벅뚜벅 되돌아온다. 장내엔 여전히 침묵만 감돌아서, 청장의 발걸음 소리만 홀 전체에 또렷하게 울려 퍼진다.
청장은 보스의 바로 앞에서 멈춘다. 보스는 제 부하들 앞에서 기싸움을 성공해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눈을 피하지 않고 청장을 노려본다. 산전수전 다 겪은 조폭 인생, 경찰 뭐 만만하지, 지방청장쯤 된대도 공무원은 날 못 당해-
보스는 비아냥거리기 시작한다. "주둥이가 주둥이지 뭐요? 견찰 할 때 견이 개 견이잖아. 그럼 주둥이지."
청장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는데, 표정이 읽히질 않는다. 고요하고 깊은 눈, 연륜이 느껴지는 백발, 위압감이 뿜어져 나온다.
보스는 순간 섬찟함을 느낀다. 보통은 감이 오는데 - 뇌물을 먹을 사람일지, 아니면 물불 못 가리고 칼춤 추다가 윗선에 밉보여서 짤릴 사람인지 - 이건 이도 저도 아니다. 어느 쪽인진 모르겠는데, 독종인 건 확실하다. 보통은 의례적으로 잡다가 놓쳐 주곤 했는데 왜 이 인간은 현장까지 직접 나타나서 온통 들쑤셔놓은 걸까, 거기부터가 이 인간이 예사 인물이 아닌 걸 알았어야 했나. 보스의 키가 더 큰데도, 어쩐지 청장이 내려다보는 것 같다.
보스는 여전히 뻗댄다. 한껏 고개를 빳빳이 쳐들며, 당신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어쩌라고. 우리 건드렸으면 무서운 줄을 아셔야지. 부산에 온 진 몇 년 차신가? 알긴 알고 건드렸나 몰라?"
"내가 너 같은 새끼들 한둘 본 줄 아니." 서늘한 음성이 낮게 깔린다.
보스가 유들거린다. "사업 열심-히 하고, 길거리에서 버러지 노릇 하던 이놈들 싹 데려다가 먹여살리고. 내가 곧 애국-"
"니가 쟤네들 먹여살렸다고? 니가 쟤네들 끌어들인 거야, 니 수준으로." 말끝을 꾸욱 누르는 날카롭고 싸늘한 목소리. "말은 똑바로 하자, 버러지 새끼는 너야."
보스는 잠시간 할 말을 잃더니, -부하들 시선을 의식해서- 냅다 목청을 키워 욕설을 퍼붓는다. 기싸움의 국면을 바꿔보려는 시도였지만, 청장이 더 큰 목소리로 그 고함을 압도해버린다. "안 닥쳐 이 새끼야???? 우리 애들 귀 썩는다-!!!"
결국 목청에서도 완패한 보스는 열이 오를 대로 오른다. 1대 1로 몸싸움 승부라도 내고픈지 형사들을 떨쳐내려고 몸부림친다. 형사들이 버거워하자 청장은 작게 손짓하고, 대기하던 기동경찰들이 보스를 꽉 눌러 바닥에 꿇어앉힌다.
청장이 보스를 내려다보며 픽 웃는다. "너만 묶여 있는 것 같니? 나도 너 패면 안 된다는 법에 묶여 있단다. 내가 경찰만 아니면... 너 같은 건," 청장은 보스 쪽으로 몸을 굽히곤 몇 마디를 이어서 낮게 내뱉는다. 그 내용이 들리면 파릇파릇 어린 경찰들에게 교육적으로 안 좋을까 봐 그랬을까, 보스만 알아들을 정도로 나직한 음성이다.
청장 표정은 부하들이 보기에도 무서울 만큼 고요하고 서늘하다. 청장은 가까이에서 보스 눈을 매섭게 쏘아보다가 허리를 편다. 무슨 말을 들은 걸까, 보스가 갑자기 눈을 슬슬 피하기 시작한다. 이제 따까리들도 알 수밖에 없다, 저들의 대장이 기싸움에서 완전히 참패했음을, 애초에 기싸움이 될 만한 상대가 아닌데 덤볐음을. 하여, 그들은 전의를 상실한 듯 순순히 끌려들어간다. 반면 형사들은 지친 와중에도 힘이 났던지, 몸놀림이 이전보다 더 활기차 보인다.
아버지가 딸 쪽으로 몸을 기울여 소곤거린다. "어머니 카리스마 봐라. 목청은 어째 매년 더 커지시는 것 같지 않니?" 딸 역시 소곤소곤 답한다. "폐활량이 어메이징해요. 폐활량도 계속 쓰면 발전하는 건가?"
"수고했다. 체포팀, 아주 잘했어 오늘. 얼른 퇴근하자아! 당직들은 수고하고!" 역시 우렁찬 목청으로 청장이 마무리 멘트를 하자, 형사들과 기동대 일동은 일제히 경례를 붙인다. 청장은 그 자리에서 외투만 달랑 들고 퇴근한다: 처음 서장 부임한 젊은 시절엔 유치장에 넣는 것까지 꼭 보고 들어가곤 했지만, 지금의 한청장은, 가장 윗사람이 퇴근해 주어야 나머지도 편히 마치고 쉰다는 원리를 터득한 베테랑이다.
청장은 뒤꿈치를 축으로 휙 경쾌하게 돌아서더니 특유의 확신에 찬 걸음걸이로 로비를 가로질러 나온다. 입구 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남편과 딸내미를 발견하고는 얼굴 가득 기쁨을 드러낸다. 방금의 그 서늘하고 위압적인 분위기는 어디로 가고, 누가 봐도 뜨거운 사랑꾼의 얼굴이자 따스한 어머니의 얼굴.
남편과 딸이 씩 웃으면서 동시에 척 경례를 올려붙인다. 나란히 서서 웃을 때면 둘의 눈꼬리는 정말이지 똑같다.
“이게 누구냐!! 은영아!!!!!” 청장은 딸에게 뛰어들어 덥석 껴안는다. "아우 엄마, 숨 막혀."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는 딸을 번쩍 들어 올려 한 바퀴 빙그르르 돌고는 내려놓는다. 아버지는 다가가서 아내와 딸을 한 품에 포옥 안는다.
"딸... 오랜만에 집 왔는데 엄마 주말 근무라 미안하다. 저새끼들 탈탈 털어야 해..."
미안해하는 표정 짓는 어머니. 은영은, 우리 엄마지만 표정이 너무 귀엽다는 생각을 한다. 방금은 아주 호랑이 같으셨는데. 멋있고 귀엽고 다 하는 우리 엄마. “엄마, 흰머리 느셨다." 염색할 짬도 없어, 어머니의 단발머리는 회색과 은색이 많이 섞인 반백이다. 근데 사실 이게 오히려 카리스마를 더해주는 것 같아, 연륜이 느껴지잖아.
"아예 간달프처럼 다 은색으로 염색해버리시면 어때요?” “언젯적 간달프야. 근데 올 백발은 아빠가 더 잘 어울릴 거 같지 않니?” 한청장은 남편 머리카락을 보풀보풀 흐트러트리며 장난을 친다. 그 말에 살짝 불안해진 듯 남편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청장은 단발이 흔들리도록 껄껄 웃어재낀다. “은영아, 아빠 설득해서 그거 함 시켜봐. 아빠가 하시면 엄마도 같이 할게.” 엄마는 정말이지 아빠 놀리는 재미를 평생 제대로 즐기시는 것 같아, 은영은 속으로 생각한다.
“햐-아 엄마 힘썼더니 배고프다. 요 앞 포장마차에서 한잔?" 어머니가 잔 꺾는 시늉을 한다.
아버지와 딸은 순간 흠칫, 하면서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는다.
“에이 어무니. 내일도 출근이시라면서!" "빈 속에 짠 거 드시면 안 되죠. 몸에 더 좋은 거 먹읍시다, 집에 약식 있어요.” 평생 어머니를 대하는 말투가 깍듯한 아버지. 이 깍듯함이 아버지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란 걸 은영은 잘 안다.
“어허 차암. 둘이서 합심해서 잔소리를 하니, 내가 또 당할 수밖에 없지. 집으로 갑시다아!” 청장은 짐짓 못마땅한 듯 둘을 째려보면서도 양팔로 두 사람을 다정하게 감싼다.
이때다 싶어 남편은 손 워머를 꺼낸다. 아내 손에 워머를 쥐여 주더니, 두 손으로 포옥 덮어 감싼다.
“운전은 내가 할게, 두 분은 알콩달콩 노셔요-”
뒷좌석에서 손 꼬옥 마주잡고 서로 얼굴 보면서 그날 있었던 일 얘기 나누는 황교수와 한청장 부부. 딸내미는 백미러로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는다.
* * *
이른 아침이다. 스모그가 꽤 걷혀서 햇살이 밝다. 세 사람은 신속하게 각자의 일거리 - 아침식사한 그릇 설거지/ 식물 물주기/ 정복 다리기- 를 마치곤 거실에 모여앉는다. 영상통화 수신 대기 신호음이 몇 번 울리는 동안, 세 사람은 올망졸망 서로 얼굴을 꼭 붙여서 화면을 꽉 채운다.
“유후! 다들 오랜만입니다아-.” 푹 잤는지 편안한 얼굴에 장난스러운 웃음을 가득 담은 젊은이가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 은영 눈매가 아버지를 닮았다면, 은헌의 경우엔 크고 맑은 눈에 섬세한 쌍커풀이 어머니 판박이다. 이 큰 눈과 훤칠한 키 덕에, 배우 강동원의 리즈시절을 빼닮았다는 말도 종종 들으며 일찍이부터 기고만장했다.
“잘 쉬고 있니. 주말 내내 쉬는 거지? 몸에 좋은 거 잘 챙겨 먹으렴.” 아버지가 걱정부터 한다.
“아유 그럼요 아부지! 얼굴에서 빛이 반짝반짝 나지 않습니까? 보세요 잘 자서 피부도 좋아요-.” 은헌이 제 얼굴을 쓰다듬으며 화면 가까이 들이대자, 은영이 또 시작이네, 중얼거리며 떫은 표정을 짓는다.
“네가 취조 안 하고? 다른 사람이 맡았어?” 어머니가 궁금해한다.
"그게, 검찰로 인계했어요."
"읭? 강력 사건 수사는 경찰 전담 된 지가 언젠데." 동생이 갸웃한다.
"그게, 검사 하나가 특별수사권 발동했어. 내부 비리랑 연관되어 있어서 검찰 수사가 필수적이래." "아는 데까지 말해 봐." 아버지 표정이 확 예리해진다. "아아 아부지, 레이더 켜지셨다. 근데 난 아직 거기까지밖에 몰라요. 또 들으면 업데이트할게."
“...근데 말이지, 현장에서 인계한 거 있죠! 이런 일은 첨이야! 같이 체포했는데, 검사가 데려갔어요.”
은영이 즐거운 듯 손을 휘휘 흔든다. “아이코 세상에. 천하의 황은헌 경위께서 범인을 빼앗겼대.” 은영 입꼬리가 비죽비죽 올라간다. 이건 은영으로선 배를 잡고 깔깔깔 웃는 수준으로 즐거워하는 상태다.
“아니, 설명 좀 해봐.” 어머니가 재촉한다.
“지원팀도 없이 혼자 쫓다가, 그 검사랑 마주쳤어요. 근데 무슨 검사가 달리기를 나만큼 잘하는 거야. 둘이서 토끼 몰듯 모니까 좀 수월하긴 했죠. 결국 제압하고 수갑 채우는 건 내가 했거든? 근데 내가 이놈 흉기 주워서 증거물 봉투에 넣는 사이에, 검사가 차에 휙 태워서 가버리더라.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래서 그걸 그대로 보냈어? 오빠 그놈 쫓는다고 며칠을 고생했으면서.”
“살인범 잡는 게 중요하지, 내 공적 남기는 게 뭐 중요하냐. 그 검사, 취조 실력이 보통이 아닌가 봐. 범행 방법이랑 경위 벌써 나오고 있대.”
아들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몸을 카메라 앞쪽으로 쑤욱 기울인다.
“근데 있죠, 어머님 아버님. 이 스토리, 뭔가 익숙하지 않습니까?"
부부는 눈을 크게 뜨고 깜박거리더니,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그쵸? 비슷하죠? 두 분 첫 만남이랑요!! 사이렌 울리는 추격 현장에서 딱-! 이렇게 운명적으로다가-! 눈이 마주치셨다면서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시에 입을 딱 벌린다. “하효...” “아들아? 우리가 첨 만났을 땐 장르가 그게 아니었단다.”
“하하하, 압니다아-. 그 후 몇 년은 있다가 사귀셨다면서요? 전 달라요, 따악 – 하고 한 순간에 느낌이 온답니다.”
“아니 그래서 반하기라도 했어? 나한테 이런 짓 한 검사는 니가 처음이야, 하고?”
“사건 해결을 위한 그 집착! 집요한 눈빛, 그만큼 치밀한 일처리! 냉철한 판단력에 육상 실력까지!” 은헌 목소리에선 열정이 묻어나고 두 눈은 한껏 반짝거린다. “하아... 저거 저거.” 은영은 질려버린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금사빠 기질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거지.” 어머니가 소곤거린다.
“유전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죠. 유전이래도, 부모에겐 없던 형질이 나오곤 하고요.” 아버지가 마찬가지로 소곤소곤 답한다.
어머니가 엄격한 표정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린다.
“황은헌 경위. 일터에선 일에 집중합니다.”
“아이, 청장님. 청장님께서도 부군을 일터에서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어허! 일터에선 동료로만 대했어!”
은헌이 갑자기 살살 눈웃음치며 애교를 부리기 시작한다.
“어머니이-. 어머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탈탈 터셨다면서요.”
“아직 남았다. 이제 출근해 봐야 해.”
“저도 가 봐야 합니다. 누구랑 국밥 한 그릇 하기로 해서요.”
“(설마...)??”
“이 인연으로 검경 부부가 또 하나 탄생할지, 누가 압니까?”
은영이 뒷목을 잡는다. 부모님은 웃음을 참는 데에 실패한다. 아버지는 천장 쪽을 보며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어머니는 빵 터져 껄껄 웃으며 아버지 어깨를 팡팡 두드린다...
<어느 60대 부부의 이야기 끝>
은영 은헌 남매의 이름 돌림자 '은'. 이 돌림자는...
시목 여진 부부의 마음 깊숙이에 항상 담겨 있는... 당차고 아름답던 한 사람, 영은수 검사의 이름으로부터 온 것 아닐까요.
꽤 한참 전에 써놓고 언제 발행할까 고민하다가,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내놓아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아니지만) 밤, 미래의 유령이 우리를 미래로 데려가본다면, 하구요.
시목이 이 말을 했을 때의 눈빛은, 다시 몇 번을 봐도 아프네요.
'그래 니 말이 맞다. 내 곁에 사람이라곤 없을 거야, 평생.'
아니야 시목아... 그럴 리 없어. 알고 있지?
세상이 아무리 팍팍해져도 시목여진은 함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나아가고 있겠죠?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 안 남았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남은 연말도 따뜻하게 안전하게 보내세요! - 2020.12.25, 보리새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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